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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35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4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악(申景岳, 1725~?)
원문내용: 父추정: 신야의 두 아들 신경한(申景翰, 1719~1770)과 신경악(申景岳, 1725~?) 중 일인
- ㆍ발급시기
-
1734년 10월 2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寅 十月 卄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2 × 39.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갑인년(1734) 10월 26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갑인년(1734) 10월 26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는다.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다. 발급자의 두 아들 가운데 신경한은 이 간찰이 발급된 당시는 16세였고, 둘째 아들 신경악은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나 당시 10세였다. 본문의 내용으로 보면 수급자는 아동의 나이 정도로 파악되고, 형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경한의 경우 같은 해 발급된 여타 간찰에서 ‘한아(翰兒)’로 언급되고 있으므로, 이 간찰의 수신자는 신경한의 아우 신경악으로 추정된다.
밤낮으로 상대가 생각나 잊히지 않는 와중에 인편을 통해 두 통의 편지를 받고 무탈함을 알았으니 기쁘다고 했다. 다만 배움이 진보하지 않고 필력도 졸렬하며 지은 글도 이전만 못하니 이는 게으르고 기피하려는 마음 때문이라며 나무랐다.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돌려 부지런히 독서 한다면 자신이 머지않아 상대에게 찾아 가 볼 테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 아비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날마다 열심히 독서하며 묵은 습속을 철저히 고치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했다. 붓[筆] 한 자루를 보내니 때때로 글자를 익혀 반드시 또박또박 쓰고 갈겨쓰지 말라고 했다. 상대의 형이 내려갔으니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당시 자식의 학업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日夕思汝不能忘 便中得兩書 知無恙 可喜 第學不進筆甚拙 所作亦不如前 此由懶厭之故 豈不愧哉 自今以往 汝若回心勤讀 則吾當匪久往見 不然而一向懶厭 則吾無往見之意 汝亦有思父之心 則逐日勤讀 痛革舊習 至可至可 一筆送之 時時習字 亦必楷正 毋爲亂草 爲望 汝兄下去 汝之欣喜 若見之耳 只此 甲寅 十月 卄六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