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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34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4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 觀大추정: 신양의 아들 申景翰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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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 9월 18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寅 九月 十八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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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1크기: 18.5 × 40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갑인년(1734) 9월 18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인편으로 소식을 듣고 책읽기를 싫어하는 것을 책망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하는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갑인년(1734) 9월 18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배접된 배면에 “寄觀大”가 적혀있는 것이 확인되므로 자봉(自封)으로 보이고, 수신자는 신야의 아들 가운데 이름 또는 자가 ‘관대’인 인물로 볼 수 있다. 또한 발급 연월일 기재부 하단에는 후대의 기록으로 보이는 펜글씨로 “正郎公 筆”이라고 적어두었는데, 간첩에 포함된 여타 간찰을 통해 정랑공은 신야임을 알 수 있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다. 발급자의 두 아들 가운데 신경한은 자가 찬보(纘甫)이고, 이 간찰이 발급된 당시는 16세였다. 둘째 아들 신경악은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며, 당시 10세였다. 본문의 내용으로 보면 수급자는 아동의 나이 정도로 파악되고, 신경한의 경우 같은 해 발급된 여타 간찰에서 ‘한아(翰兒)’로 언급되고 있으므로, ‘관대’는 신경악으로 추정되나 자세하지 않다. 아명(兒名)일 가능성도 있다.
온 인편을 통해 상대가 무탈하다는 소식은 들어 다행이지만 이 아비에게 편지 한 통도 쓸 줄 모르고 독서를 싫어하는 일이 날마다 심해진다 하니 그래서 되겠냐고 했다. 상대와 동갑인 다른 아이들은 『논어』‧『맹자』를 읽으며 문리(文理)가 크게 튼 아이도 있고, 고풍(古風)을 지으며 우등으로 단계가 오른 아이도 있는데, 이런 아이들만큼 바라지는 않더라도 학문하지 않으면 남들이 천하게 여겨 무시할 것이고 학문을 좋아하면 남들이 모두 우러러보며 영화롭게 여길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상대는 남에게 천하게 여겨져서 무시당하고 싶은지 남에게 우러름을 받으며 영화롭게 되고 싶은지 묻고는, 척념(惕念)하여 옛 습속을 철저히 고치고, 가만히 앉아 송독(誦讀)에 전심한다면 문리가 날마다 진보할 것이니 노력하라고 당부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자식에게 학문 할 것을 타이르고 권장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寄觀大 【正郎公 筆】
人來聞汝無恙消息 是則固幸也 不知作書於父 其可乎 厭讀日日益甚 其可乎 他兒之與汝同甲者 或讀論孟而有文理大達者 或作古風而有優等陞學者 如此輩兒 固不敢望 而汝則將爲不文之人 不文則人皆賤而侮之 好學則人皆●(貴)尊而榮之 汝欲受人之賤而侮之乎 汝欲受人之尊而榮之乎 汝若迷不知改 則吾無可望 若能惕然知懼 痛革舊習 靜坐一處 專心誦讀 則非但文理日進 汝父之喜 將何如也 欲父之喜 莫如勤讀 汝其勉之哉 甲寅 九月 十八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