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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31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4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34년 2월 7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寅 二月 七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3.8 × 35.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갑인년(1734) 2월 7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갑인년(1734) 2월 7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스스로를 ‘父’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는다.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 발급 간찰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본론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침에 하인을 보내와 또 편지를 받고 어미를 모시며 잘 지낸다고 하니 기쁘긴 하지만 상대인 아들들이 많은 시일을 헛되이 보내고 있다고 하니 고민되는 점이라고 했다. 비록 새로 터득한 것은 없더라도 옛 학문을 익숙히 읽는다면 어찌 좋지 않겠냐고 하면서, 상대가 비록 눈앞에 놀러 다니는 것에만 빠져 지내면 스스로의 마음에도 필시 불안함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도 어머니를 모시며 이전대로 지내고 있고, 두 자매도 잘 머물러 있으니 위로된다고 했다. 보관해 둔 편지지는 내어 쓰는 것이 무슨 어려움이 있기에 이처럼 두려워하는 것이냐고 하면서, 상대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옹졸함을 좋아해서일 것이라고 했다. 어릴 때는 모름지기 기상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너희는 매우 기상이 없으니 기쁘기보다 근심되는 점이라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자식에게 학문 할 것을 타이르고 권장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추록에는, 전에 보낸 환약을 다 복용하였는지 묻고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朝送奴 又得書 知奉慈安遣 可喜 第念汝輩 浪送許多時日 此可悶也 雖無新得 熟讀舊學 豈不好哉 汝雖耽目前之游浪 於汝心亦必有不安時矣 此中侍奉如昨 兩姊妹(俱)尙留住 殊可慰也 所置紙幅 出用何難 而若是畏憚耶 非汝畏憚 是汝之拙拙固好矣 兒時須看氣像 汝則太無氣像 是吾之所以不以爲喜而還以爲憂者也 只此 甲寅 二月 七日 父
前送丸藥 已盡服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