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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9_01_A00030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4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十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5.5 × 19.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편지 받고 위로됨과 돌아갈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 아쉬운 심경 등을 전함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갑인년(1734 추정) 모월 19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父’, 수급자는 ‘兒’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자봉(自封)으로, “答兩兒”라고 쓰고 그 아래에 한글로 “아ᄒᆡ들”이라고 써서 수급자는 아들 2인에게 보내는 답장임을 알 수 있다. 이 간찰이 전래된 형태 등으로 판단하면 발급연도는 갑인년, 발급자는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로 추정된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고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 있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본론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써 놓은 편지를 보내기 전에 노 복(福)이를 통해 상대의 편지를 받고 편안하다는 점과 독서도 멈추지 않는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자신이 돌아갈 기약은 우선 예정되지 않아 답답하다고 하였다. 보내려던 원폭(原幅)을 함께 보내니 여기는 말을 덧붙이지 않겠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자식의 공부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 관직으로 객지살이 하면서 집안을 생각하는 마음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제목 없음
答兩兒 아ᄒᆡ들
裁書未發 福奴至 得書 審安 讀亦不廢 可喜 吾之歸期 姑未可預定 殊可鬱也 餘具原書 玆不復贅 十九日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