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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9_01_A00029_001
- ㆍ입수처
- 평산신씨 대종중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33년 신야 간찰 / 申埜 簡札
- ㆍ발급자
-
신야(申埜, 1697~175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33년 12월 28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癸丑 臘月 卄八 夜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9.5 × 33.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계축년(1733) 12월 28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계축년(1733) 12월 28일에 신야(申埜, 1697~175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父’, 수급자는 ‘兒’로 표현하여 부친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으로 볼 수 있다. 배접된 형태로 현존하며, 피봉은 별도로 전해지지 않는다. 두사로 “寄兩兒”라고 써서 수급자는 아들 2인임을 알 수 있고, 그 하단에 후대의 기록으로 보이는 펜글씨로 “正郎公 埜”라고 적어두어 평산 신씨 문중의 신야가 발급한 간찰임을 알 수 있다. 발급자 신야는 자는 문지(文之),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신석화(申錫華)이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생원 3등으로 입격한 뒤, 1731년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된 뒤로 장흥고직장‧종부시주부‧호조좌랑‧호조정랑‧임실현감‧사복시주부‧용인현령‧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후 약 100년 뒤인 1858년(철종 9)에 사복시정으로 증직되었고, 이때 아들 신경한도 이조참의에 증직되었음이 확인된다. 수신자인 두 아들은 신경한(申景翰, 1719~1770), 신경악(申景岳, 1725~?)이고, 본문에서 언급된 “蟾樂兄”은 민우수(閔遇洙, 1694~1756)로 추정된다. 발급자는 당시 능참봉으로서 서울에 거주하며 왕실 제사에 제관으로 차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 조상을 추모하는 마음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의 부친 신석화와 민우수의 부친 민진후(閔鎭厚)가 처남매부지간이므로 발급자의 외사촌이 민우수가 된다. 정암(貞菴) 민우수의 또 다른 호는 섬촌(蟾村)‧섬호(蟾湖)가 있다.
본론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엊그제 섬락(蟾樂) 형님의 행차 때 편지를 부쳤고 또 환약(丸藥)도 보냈는데 받았는지 묻고는 일간에 어미 모시고 잘 지내는지 등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제관(祭官)에 차출될 것이라 여겼지만 결국 어긋나버렸기에, 선영 쪽을 바라보며 곱절 상로(霜露)의 감회가 간절해진다고 하였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아 상대가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것이니 큰 뜻을 분발하고 더욱 근면해서 문학의 명성과 덕망이 해와 더불어 새로워지길 바란다는 덕담을 남겼다.
- · 『承政院日記』 『平山申氏大同譜』 卷2 南有容 『雷淵集』 卷23 「戶曹正郞申公墓碣銘」
참고자료
원문
寄兩兒 【正郎公 埜】
再昨蟾樂兄主之行付書 且送丸藥矣 見之否 日間又復過暖 奉母好遣否 吾差祭之計 竟至緯繣 瞻望松楸 倍切霜露之感耳 歲除隔日矣 又將添一齒 奮發大志 益自勉勵 文學聲望 與歲俱新 是區區之祝也 不多及 癸丑 臘月 卄八 夜 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