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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8_01_A00015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종회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06년 박주신 등 상서 / 朴周臣 等 上書
- ㆍ발급자
-
박주신 등(朴周臣 等,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906년 8월간지연도: 丙午왕력: 光武 10추정시기:본문: 丙午八月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07 × 68.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사림 朴周臣 등이 유학 金秉元의 妻 沈氏의 孝㤠 포상을 요청하는 문서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906년 박주신(朴周臣), 심익서(沈翼書) 등 28명이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에게 올린 상서(上書).
1906년(광무 10) 8월에 사림(士林) 박주신(朴周臣), 심익서(沈翼書) 등 28명이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상서는 조선시대 백성들이 소송(訴訟)·청원(請願)·진정(陳情) 등을 위해 지방 수령이나 관찰사 등에게 이두(吏讀)가 아닌 정중한 문구로 올리는 문서이다. 지방 수령이나 관찰사 등은 상서의 내용을 확인한 후에 상서의 여백에 처분의 내용인 제음(題音)을 적어 내려 보냈다. 박주신, 심익서 등은 강원도관찰사에게 삼척군에 사는 고(故) 유학(幼學) 김병원(金秉元) 처(妻) 심씨(沈氏)의 효행(孝行)과 열행(烈行)에 대해 포상을 요청하였다. 상서의 내용은 심씨의 성품을 언급하고, 심씨의 시부모에 대한 효행과 남편에 대한 열행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심씨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화하였고 부모를 효로 섬겼으며, 장성하자 김씨(金氏) 집안에 시집간 후에 시부모를 섬기고 집안의 예의범절을 돈독히 하여 집안사람들과 이웃 사람들 모두 칭송하였다. 지난 을축년(1865) 봄에 시아버지의 병환을 정성으로 간호하였고, 돌아가신 후에 통곡하고 몸이 상하도록 매우 슬퍼하였다. 정묘년(1867) 봄에 시어머니의 오랜 병환을 정성으로 간호하였고, 돌아가신 후에 시아버지 상을 당했을 때와 같이 매우 슬퍼하였다. 경오년(1870) 봄에 남편도 병이 들어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세상을 떠났다. 심씨는 남편의 삼년상을 마치고 남편이 돌아간 날에 남편 곁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박주신, 심익서 등 28명은 이러한 심씨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 국왕에게 아뢰어 특별한 포상을 내려줄 것을 강원도관찰사에게 요청하였다. 8월 25일에 강원도관찰사는 ‘심씨의 효행이 뛰어나고 달라서 들으니 매우 감탄스럽다. 포상하고 드러내는 일은 더욱 공의(公議)를 기다려야 하니 우선 마을에서 이미 시행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강원도관찰사는 상서의 좌측 여백에 ‘관찰사(觀察使)’를 초서(草書)로 쓰고 그 아래 ‘봉인(封印)’을 기재하고 착압(着押)을 하였는데, 당시 강원도관찰사의 관인(官印)이 봉인(封印)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1906년 박주신(朴周臣) 등 상서(上書)를 통해 심씨의 효행과 열행에 대한 포상을 요청하기 위해 사림들이 강원도관찰사에게 상서를 올리는 과정과 이에 대해 강원도관찰사가 내린 처분을 확인할 수 있다. 1906년 박주신 등 상서와 함께 김병원 처 심씨의 효행과 열행에 대해 삼척부사와 강원도관찰사에게 포상을 요청하는 소지와 상서는 총 4점이 전해지고 있다. (자료 ID : A008_01_A00013_001, A008_01_A00014_001, A008_01_A00016_001)
원문
士林朴周臣沈翼書等 謹再拜上書于
巡相閤下 伏以樹風礪俗 朝家之盛典 揚善闡幽 士林之公議也 本郡故學生金秉元妻沈氏 粤自髫齡 賦性淑均 行已有度 事父母以孝 遇娣妹以敬 屹然若成人儀 及長歸于金氏之門 事舅姑 處宗族 尤篤於在家之儀範 一門敬服 隣
里咸稱 其舅姑甚愛之 其夫又敬重之 有如崔門之孝敬 冀缺之相待 往在乙丑春 其舅以泄痢 委褥數朔 侍湯供甘 竭盡其誠 親自扶起 少無怠惰 漸至危𤭏 以終天年 擗踊之哭 哀毁之節 孰不感泣 其後辛卯春 其姑亦以宿症 延
至八朔 擁爐侍湯 晝宵不眠 天年有數 竟未救甦 泣血哭擗 無異前喪 如此根天之行 世所罕有 而及當庚午之春 其夫又以泄痢 累朔不起 晝夜遺矢 恐傷糞門 以舌舐之 嘗糞侍湯 不使替勞於子孫 祝天願代 不令聞知於諸姑 色
憂度日 夫病漸危 其指三斷 以血注口 幸以得甦 竟至三日 奄忽捐世 一聲哀號 扶屍氣絶 因其子女救扶之誠 有頃而甦曰 卽爲致命 下從所天 是吾宿昔之願也 因還氣塞 擧家驚惶 一門焦㦖 煎藥注口 久而復甦 顧謂子侄曰 襲斂有禮
殯服有限 奈何以我之故尙稽遲留乎 吾當節哀延縷 躬檢殯斂 理所當然 朝夕哭泣 朔望上墓 克竭餘誠 及至大忌之日 祭奠庶品 躬自備進 行祀後 語其子女曰 吾至救命者 以所天終喪故也 今則雖云在世 焉有用之 我死之後 願
埋於所天之側 語絶而終 卽其夫屬纊之日也 自古婦人烈行 何代無之 從容就義者 未聞有如沈氏之行 噫 其幽閒之德 貞靜之行 孰不欽仰而景慕起興也哉 海濱遐遠 天日未回 行路之咨嗟 士林之抑鬱 積有年所 故玆敢齊
籲於明政之下 參商敎是後 上達
天聽 俾蒙優典之地 無任悚仄祈懇之至
觀察使閤下
丙午八月 日
士林 沈珣模 金源國 金源奎 金演敎 金源生 金源徹 崔周顯 崔東暘 崔東昇 金演權 金雲卿 洪圭鎭 洪達鉉 金源本 洪能燮 金源昌 崔東斗
崔東普 崔文祥 崔世顯 鄭然澤 崔禹集 鄭昌和 崔相崑 金銓卿 李晉璜 等
(題音)
孝行이 卓異ᄒᆞ니 聞
甚欽歎이라 褒揚之
節 益竢公議이고 先才
洞中 旣當行向事
卄五日 在三陟三和守
觀察使 封印 [着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