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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6_01_A00735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윤형식 간찰 / 尹亨植 簡札
- ㆍ발급자
-
윤형식(尹亨植)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원식(權遠植)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907년 11월 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未至月五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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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24.8 × 28.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907년 11월 5일에 윤형식(尹亨植)이 권원식(權遠植)에게 보낸 편지이다. 만남 이후 보내준 서찰에 대한 인사와 근래 寺洞으로 이사한 것과 관련한 근황 등을 전했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907년 11월 5일에 윤형식(尹亨植)이 권원식(權遠植)에게 보낸 편지이다. 서지적으로는 근대 간찰로, 국내와 일본 도쿄 사이의 가족·지연 네트워크, 이삿짐 관리와 서류·물건 송부 등 생활적 사안이 한문 문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근대 생활사 자료로 가치가 있다. 또한 강릉과 동경을 연결하는 교유망과 당시 청년층의 도일(渡日) 유학·취업 배경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윤형식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해방 이후 북한의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1930년 강원도 철원 불이농장(不二農場)에서 농민조합운동을 지도하였으며, 전라남도 지역의 농민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32년 잡지 『혜성』에 「위기에 직면한 영제국」을 기고하며 사회주의적 비판의식을 드러냈다. 해방 후 1945년 건국준비위원회 건설부 책임자로 활동하였고, 조선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의 영업국장과 『노력인민』 편집국원으로 일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윤형식은 먼저 오랜만의 이별 이후 해가 바뀔 만큼 시간이 흘렀다며, 동쪽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그리움이 더 깊어진다고 토로한다. 이어 상대 집안에서 먼저 안부를 물어온 데 대해 감사와 위안을 표하고, 이번 겨울날씨 속에서도 권주사의 신체와 집안의 평안이 유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적는다. 그는 자신의 처지는 그저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일 뿐이라며 몸과 마음이 여의치 않음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최근 초여름에 사정동·사동 일대로 거처를 옮겼으나 뚜렷하게 말씀드릴 만한 형편이 못 된다고 말해 생활 사정의 어려움도 드러난다. 이어 중요한 실무적 사안을 언급한다. 죽헌에서 보내온 옷상자는 이사 과정에서 집이 비좁아 다른 곳에 잠시 보관했으나, 그 집 주인이 마침 부재중이었고 본인 또한 이사 일로 분주하여 아직 찾아 전달하지 못했음을 해명한다. 다만 기회가 닿으면 바로 찾아서 보내겠다고 약속하며 양해를 구한다. 또한 벽동(碧洞)의 문중 인물에게 보낸 편지와 물건은 문제없이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말해, 강릉·경성·타 지역을 오가는 물류·서신 흐름을 보여준다. 그는 상대의 상경 예정 시기가 대략 그즈음일 것 같다고 덧붙이며, 자신의 바쁜 형편으로 장문의 예를 갖추지 못한 점을 사과하면서 편지를 마무리한다.
제목 없음
竹軒 權主事遠植 座下
本郡守署理 崔祺集
江原道 江陵郡 鏡浦面 竹軒里 二○九 竹原庸盛 殿
東京都 本鄕區 駒込千馱木町 四九 岐阜舘 竹原芳秀
稽顙 一別而歲已換 日已積矣 有時東望 秪增悵懷 際承先施之問 仰慰且感 更伏詢比寒 省體之萬旺 覃節均寧 遠外仰溸之至 罪生 頑忍苟息而已 今初夏 搬接于寺洞等地 所事不足仰道耳 貴衣箱 搬移時 以家狹所致 任置於他處矣 該主適不在 且因便忙 無暇覓來 故未得付呈 可於後便 覓付計 碧洞鄙宗許所去札與物 當信傳矣 以此諒之 如何 洛駕之期 似在那間耶 餘忙迷 姑不次疏
丁未至月五日 罪生 尹亨植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