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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6_01_A00728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07년 민영규 간찰 / 閔泳奎 簡札
- ㆍ발급자
-
민영규(閔泳奎)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오석(權五錫)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907년 2월 20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未 2월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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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24 × 14.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907년 2월 20일에 민영규(閔泳奎, 1846~1923)가 오죽헌 권오석(權五錫)에게 보낸 편지다. 봄철 안부인사와 서찰 받음과 자신의 宿病에 대한 근황 등을 전했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907년 2월 20일에 민영규(閔泳奎, 1846~1923)가 오죽헌 권오석(權五錫)에게 보낸 편지다. 편지는 오죽헌 안동 권씨 가문과 조선 후기 명문가인 여흥 민씨 가문의 교유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이며, 문안과 병세 보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근대기 간찰 형식이다. 특히 발신자가 자신을 쇠약한 몸으로 칭하고 오래된 병과 새 병이 겹쳐 힘겨운 상태임을 고백하면서도, 수신인의 평안과 가문의 길상(吉祥)을 먼저 기원하는 예의 구조는 사대부 간 문치(文治)와 예절 문화를 잘 보여준다. 민영규는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원(景源)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궁내부 대신·의정부 의정대신 등을 역임하였다. 1906년 의정부 의정 대신에 올랐으며, 1908년 대동학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10년 일제에 의해 작위와 사금(私金)을 받았다. 1920년대 친일단체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봄철이 이미 절반이 지나갔으나 자세한 소식을 들을 길이 없어 마음이 애달프다고 밝힌다. 이어서 수신자의 편지를 받아 그의 근래 형편이 평안하고 집안이 모두 화목하다는 소식을 접한 데 대해 깊이 위로한다. 이어 그는 자신의 병세가 점점 심해져 오래된 병에 새 병증이 더해지고, 여러 증상이 겹쳐 스스로를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졌음을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집안 자녀와 가족들에게 별다른 일은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신인의 자세한 조언과 뜻을 잘 읽었으나, 지금의 형편상 그에 맞게 대응하거나 마음을 온전히 쓰기 쉽지 않음을 밝히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이어서 그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아 근심이 쌓이고 답답함이 깊어짐을 덧붙이고, 마지막으로 충분한 사례를 갖추지 못함을 사과하며 편지를 맺는다.
제목 없음
烏竹軒 權碩士侍座 升啓
齋西謝候椷 閔議政
春序過半 問聞莫憑 悵頌政勤 際拜承惠訊 藉審比暢 省候萬穆 覃節吉祥 仰慰愜禱 弟 衰相轉甚 宿疴新〖症〗 秩相侵攻 實難搘拄 良覺益憐 而惟以諸率無警爲幸耳 示意詳悉 而曷當不留神相機也哉 每多事與心違 悶鬱悶鬱 餘不備謝禮
弟 閔泳奎 拜
丁未二月卄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