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716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위답(慰答)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민응식 간찰 / 閔應植 簡札
- ㆍ발급자
-
민응식(閔應植)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辰 6월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5.6 × 43.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이 간찰은 1892년 6월 27일에 민응식(閔應植, 1844~?)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로, 상중(喪中)의 위문에 대한 답례와 근황 보고가 함께 담긴 서신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이 간찰은 1892년 6월 27일에 민응식(閔應植, 1844~?)이 지인에게 보낸 편지로, 상중(喪中)의 위문에 대한 답례와 근황 보고가 함께 담긴 서신이다. 문체는 정중한 예문체를 따르며, ‘소상(疏上)’이라는 표제가 붙은 점으로 보아 단순한 인사 편지가 아니라 의례적 감사를 표한 공식 답신의 성격을 지닌다. 이 간찰은 상변 후의 교유가 단순한 인사 왕래를 넘어 의례적 도의와 인간적 정이 교차하는 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점에서, 근대기 유교 사회의 예문화와 인간관계망을 이해하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민응식은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문(性文), 호는 우당(藕堂)이다. 1882년 문과에 급제한 뒤 혜상공국총판·대사성·이조 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자신의 장호원(長湖院) 집으로 피신시키며 외척 세력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이후 이조 판서·병조 판서·예조 판서 등을 지내며 조선 후기 수구파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1894년 갑오경장 때 개혁 정책에 반대하다가 고금도(古今島)로 유배되었고, 이후 복직하였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상대의 위문과 조의를 받들어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히며, 상대가 당한 상변(喪變)에 대해 놀라움과 슬픔이 아직 가시지 않았음을 토로한다. 그는 곧바로 부음을 전하지 못하고 뒤늦게 사정을 알리게 된 것을 사죄하며, 이미 먼저 베푼 은혜에 대한 감사와 부끄러움을 함께 표한다. 이어서 여름철의 더위 속에서도 상대가 건강을 지키고 있기를 바란다고 전하며, 자신은 공사(公私) 양면의 번거로움 속에서 근심이 쌓이고 더위로 시달려 심신이 고단하다고 토로한다. 끝으로 자신이 부채 2자루를 선물로 보낸다고 언급하였다. 수신에서는 상대가 보낸 물품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거듭 언급하며, 백청(白淸)이라는 선물의 이름을 직접 적어 감사의 뜻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제목 없음
謝慰疏上
省禮 向者遭艱 曷勝驚怛 趁未承訃 修唁此遲 卽拜先施 慰悚交摯 第審比熱 哀節萬支 是旋仰喜 記下 公私滾惱 暑滯爲苦 甚悶甚悶 餘留不備 謹謝疏上
壬辰六月念七日 記下 閔應植 疏上
二扇仰呈
惠貺白淸 仰感仰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