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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6_01_A00676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증빙류-시권(試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47년 권계학 문과 전시 시권 / 權啓學 試券
- ㆍ발급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88)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 한양수취지역 한양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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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卯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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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67.7 × 30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47년 권계학(權啓學)이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서 ‘엽피남무 전준지희(饁彼南畝 田畯至喜)’라는 시험 문제에 작성한 시권(試券)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1747년(영조 23)에 유학(幼學) 권계학(權啓學, 1716~1788)이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 전시(殿試)에서 ‘엽피남무 전준지희(饁彼南畝 田畯至喜)’라는 시험 문제에 부(賦)를 지어 작성한 시권(試券)이다.
조선시대 과거 제도는 문신을 선발하는 문과(文科)와 무신을 선발하는 무과(武科)와 전문 기술관을 선발하는 잡과(雜科)로 나눌 수 있다. 문과는 생원(生員)과 진사(進士)를 선발하여 성균관의 입학 자격을 부여하는 소과(小科)와 관원을 선발하는 대과(大科)가 있다. 소과에서 생원을 선발하는 생원시(生員試)는 유교 경전인 사서(四書)와 오경(五經)에 대한 이해와 논술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며, 진사를 선발하는 진사시(進士試)는 시(詩)와 부(賦) 등의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생원시와 진사시는 지방에서 거행하는 초시(初試)와 초시에서 합격한 사람이 시험을 치루는 복시(覆試) 또는 회시(會試)로 구성되었다. 대과는 초시(初試)·복시(覆試)·전시(殿試)의 순서로 강경시험(講經試驗)과 제술시험(製述試驗)을 거행하였다. 최종적으로 33명을 선발한 후에 전시(殿試)에서 갑과(甲科)·을과(乙科)·병과(丙科)로 과거 합격자의 등수를 결정하였다. 과거 시험은 3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거행하는 식년시(式年試)와 비정기적으로 거행하는 증광시(增廣試)·별시(別試)·알성시(謁聖試)·중시(重試) 등이 병행되었다.
시권은 조선시대 과거 시험의 답안지로 우측에 명지(名紙)와 좌측에 시권으로 구성되었다. 명지에는 과거 시험 응시자의 직역, 성명, 나이, 본관, 거주지와 사조(四祖)의 품계·관직·성명을 기재하였다. 시권에는 과거 시험 문제인 시제(試題), 시관(試官), 답안 내용, 점수, 등수, 자호(字號) 등을 기재하였다. 시관이 시권을 채점할 때에는 명지를 봉하는 봉미(封彌)를 하거나 명지를 잘라내는 할거(割去)를 하여 과거 시험 응시자와 사조의 정보를 보지 못하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권과 명지가 분리되어 각각 별도로 전해지는 경우도 있다. 1747년 권계학 시권은 시권과 명지를 봉미(封彌)하고 할거(割去)하였지만, 시권과 명지가 함께 전해지고 있다. 시권은 가로형 시권과 세로형 시권으로 구분되는데, 가로형 시권은 식년시·증광시·별시 등에서 작성되었고 세로형 시권은 알성시·정시(庭試)·춘당대시(春塘臺試)·성균관과 사학(四學) 과시(課試)·백일장 등에서 작성되었다.
권계학은 과거 시험을 응시할 때에 직역이 유학(幼學)이고, 나이가 32세이며, 본관이 안동(安東)이고, 거주지는 강릉(江陵)이다. 권계학의 사조(四祖)는 부친이 선략장군(宣略將軍) 행(行)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 권득형(權得衡)이고, 조부가 학생(學生) 권윤재(權允載)이며, 증조가 통덕랑(通德郞) 권시태(權始泰)이고, 외조가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최태숭(崔泰嵩)이며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권계학은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 전시(殿試)에서 ‘엽피남무 전준지희(饁彼南畝 田畯至喜)’라는 시험 문제에 부(賦)를 지어 ‘삼지십삼(三之十三)’의 등수를 받았다. ‘엽피남무 전준지희’는 『시경(詩經)』 빈풍(豳風) 칠월(七月)과 소아(小雅) 보전(甫田) 등에 나오는 내용으로 ‘저 남쪽 이랑으로 밥을 내오면, 전준(田畯, 농사를 권하는 관직)이 와서 기뻐하네.’라는 의미이다. 시권의 앞면에는 ‘정묘식년문과병과제십삼인망(丁卯式年文科丙科第十三人望)’이 기재된 홍색 첨지(籤紙)가 붙여 있으며, 등수인 ‘삼지십구(三之十三)’과 자호(字號)인 ‘칠지(七地)’가 기재되어있다. 시권의 명지(名紙)를 봉미(封彌)한 부분과 답안의 글자를 수정한 곳에 각각 과거지보(科擧之寶)가 찍혀 있다.
권계학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字)는 성집(聖集)이고, 호는 죽암(竹岩)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1747년(영조 23) 식년시(式年試) 문과(文科)에서 병과(丙科) 제13인으로 합격하였고, 이후 경양도찰방(景陽道察訪)·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예조정랑·병조좌랑·병조정랑·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747년 권계학(權啓學) 시권(試券)을 통해 권계학이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과정, 과거 시험에 출제된 시험 문제, 권계학이 작성한 답안과 받은 등수와 과거 합격 여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제목 없음
幼學 臣 權啓學 年三十二 本安東 居江陵
父 宣略將軍 行龍驤衛副司果 得衡
祖 學生 允載
曾祖 通德郞 始泰
外祖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崔泰嵩 本全州
三之十三
七地
七地 七地
三之十三
(紅籤) 丁卯式年文科丙科第十三人望
饁彼南畝 田畯至喜 賦
周原膴而辟萊 婦依士而饟黍
勤趍事而服力 共作勞而瞻女
田師昬而夙駕 頫民情而深悅
旣不勸而自勤 認赴功之可樂
周制有此農官 掌穡事而恒勵
遊民間而勸業 奉上意而効職
勤明農而職思 云有事乎西疇
良耟畟而載祚 茅襏荷而徂畛
繽農夫之昬勞 又婦子之來瞻
民俗熙而克敏 我稼慶而將就
然訓農之有法 宜省耕而課功
恐民事之或怠 遵彼壠而來咨
彼蠢氓之擧趾 果赴役而克勤
田畝間而薅蓼 耒耟後而載莒
勤塗足又沾體 婦思媚其來饁
業自効於力穡 敎固成於不令
民旣尙於樂生 我何督於課農
爭茀厥而種茂 喜雨公而及私
烝庶由而乃粒 邦本以而可固
旣如彼其樂業 顧我心兮則喜
由稼穡之力勤 致公法之無曠
斯民心之忠愛 賴稷劉之遠化
登葩經而想像 仰豳土之遺風
忠可見於獻豜 慮亦長於授衣
況田功之克務 爭及時而恒勤
知稼事之最難 一於玆而無怠
于耟地而力服 擧足際而忘勞
猗彼婦之勉農 依厥士而來餉
令不行而自行 所田畯之迺喜
躋公堂而稱觥 又周民之熙皥
[科擧之寶] 21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