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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해제
정조는 관동 유생을 시취하기 위해 공령생, 경공생의 명단과 함께 오죽헌 주인의 후손 명단을 보고하라 명하였다. ‘오죽헌 주인의 후손’은 권처균(權處均)에게서 오죽헌을 상속받아 지켜온 안동권씨 죽헌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尹師國)은 1793년 2월 16일에 12명의 명단을 보고하였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문관(文官) 권한위(權漢緯), 유학(幼學) 권한인(權漢仁), 권한룡(權漢龍), 권양(權穰), 권필(權馝), 권헌(權櫶), 권정(權楨), 권능(權楞), 권복(權馥), 권적(權樀), 권재(權榟), 권한복(權漢復). 오죽헌 주인의 후손은 여타의 공령생들과 함께 제술 시험을 보았으나, 74인의 여타 공령생과 달리 특혜가 주어졌다. 공령생의 1차 시험은 사흘에 걸쳐 나누어 진행하였으나 이들에게는 사흘 동안 시험을 치르게 하지 않고 첫날의 시(詩)와 의(義)에만 응시하게 한 것이다. 또한 여타 공령생들과 같은 장소에서 함께 응시하지 않고 별도로 마련한 자리에서 응시하게 하였다. 12명 중에서 1차 시험에 합격한 이는 권한복과 권한인 2명이었다. 이 시권은 이 때 권한인의 시권이다.
시제(試題)는 “기추기맥(其追其貊)”으로, 시경(詩經)「대아(大雅)・한혁(韓奕)」의 “왕이 한후(韓侯)에게 내려주시니, 추(追)와 맥(貊)이로다[王錫韓侯, 其追其貊].”라는 대목에서 가져온 구절이다. 조선 후기에는 맥을 고대에 강원도 지역에 존재한 부족의 이름으로 이해하였으므로 시제의 의도는 아마도 강원도의 역사성을 묻는 데 있었을 것이다. 답안에서 권한인은 다른 제후가 입조(入朝)하여 주나라 임금을 알현하였을 때는 역내(域內)의 토지나 술과 궁시(弓矢) 등 귀한 물건을 내려주었으나 한후(韓侯)가 처음 입조하여 알현했을 때는 주 선왕이 추(追)와 맥(貊) 지역을 내려준 의미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였다. 주 선왕이 추와 맥을 내려준 데에는 한후에게 자신의 선조가 오랑캐의 땅에서 기업(基業)을 일으켰던 역사를 기억하고 선조의 사업을 잘 계승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이것은 작질(爵秩)을 내리는 것보다도 특별한 은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추와 맥이 오랑캐의 땅이나 선조를 계승하게 하는 은전(恩典)을 베풀었으니 주 선왕이 한후에게 깊고 극진한 정의(情誼)를 보여준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권한인은 시제(試題)의 출전(出典)인 시경「한혁」 등 여러 경문(經文)을 인용하여 문제의 의미를 정리하였으나 의미의 확장이나 깊이 있는 탐구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권한인의 시권은 三下의 성적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