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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6_01_A00665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증빙류-시권(試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93년 권한인 시권 / 權漢仁 試券
- ㆍ발급자
-
권한인(權漢仁, 1738~1816)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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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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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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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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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139.5 × 88.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권한인(權漢仁; 56)의 1793(정조17) 관학과제시(추정) ‘기추기맥(其追其貊)’ 시의(詩義) 어고 시권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국학진흥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정조는 관동 유생을 시취하기 위해 공령생, 경공생의 명단과 함께 오죽헌 주인의 후손 명단을 보고하라 명하였다. ‘오죽헌 주인의 후손’은 권처균(權處均)에게서 오죽헌을 상속받아 지켜온 안동권씨 죽헌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尹師國)은 1793년 2월 16일에 12명의 명단을 보고하였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문관(文官) 권한위(權漢緯), 유학(幼學) 권한인(權漢仁), 권한룡(權漢龍), 권양(權穰), 권필(權馝), 권헌(權櫶), 권정(權楨), 권능(權楞), 권복(權馥), 권적(權樀), 권재(權榟), 권한복(權漢復). 오죽헌 주인의 후손은 여타의 공령생들과 함께 제술 시험을 보았으나, 74인의 여타 공령생과 달리 특혜가 주어졌다. 공령생의 1차 시험은 사흘에 걸쳐 나누어 진행하였으나 이들에게는 사흘 동안 시험을 치르게 하지 않고 첫날의 시(詩)와 의(義)에만 응시하게 한 것이다. 또한 여타 공령생들과 같은 장소에서 함께 응시하지 않고 별도로 마련한 자리에서 응시하게 하였다. 12명 중에서 1차 시험에 합격한 이는 권한복과 권한인 2명이었다. 이 시권은 이 때 권한인의 시권이다.
시제(試題)는 “기추기맥(其追其貊)”으로, 시경(詩經)「대아(大雅)・한혁(韓奕)」의 “왕이 한후(韓侯)에게 내려주시니, 추(追)와 맥(貊)이로다[王錫韓侯, 其追其貊].”라는 대목에서 가져온 구절이다. 조선 후기에는 맥을 고대에 강원도 지역에 존재한 부족의 이름으로 이해하였으므로 시제의 의도는 아마도 강원도의 역사성을 묻는 데 있었을 것이다. 답안에서 권한인은 다른 제후가 입조(入朝)하여 주나라 임금을 알현하였을 때는 역내(域內)의 토지나 술과 궁시(弓矢) 등 귀한 물건을 내려주었으나 한후(韓侯)가 처음 입조하여 알현했을 때는 주 선왕이 추(追)와 맥(貊) 지역을 내려준 의미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였다. 주 선왕이 추와 맥을 내려준 데에는 한후에게 자신의 선조가 오랑캐의 땅에서 기업(基業)을 일으켰던 역사를 기억하고 선조의 사업을 잘 계승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 이것은 작질(爵秩)을 내리는 것보다도 특별한 은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추와 맥이 오랑캐의 땅이나 선조를 계승하게 하는 은전(恩典)을 베풀었으니 주 선왕이 한후에게 깊고 극진한 정의(情誼)를 보여준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권한인은 시제(試題)의 출전(出典)인 시경「한혁」 등 여러 경문(經文)을 인용하여 문제의 의미를 정리하였으나 의미의 확장이나 깊이 있는 탐구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권한인의 시권은 三下의 성적을 받았다.
제목 없음
【시제】
「詩義 ‘其追其貊’」
【본문 - 원문】
「詩義 ; 其追其貊」
吁, 周王之封侯也, 寵錫之不一. 乃命魯公, 則錫之山川·土田·附庸, 乃命義和, 則賚爾秬鬯·盧弓·矢千, 而至若韓侯之入覲也, 用錫以夷狄之國, 何哉.
噫, 百蠻蓁蓁, 荒陬漠漠, 而惟爾先祖, 因是而受命, 則今此梁山奕奕, 初立來朝, 而寵錫以其追其貊者, 抑亦有符乎‘于周受命, 自召祖命者’歟. 然則追貊之域, 屬乎百蠻, 而先祖之業, 旣基乎是土, 則惟此錫命必以是壃域者, 此莫非纘舊之緖, 而將①多于功也. 是知康侯之錫馬蕃庶·吉師之王三錫命, 此不過恩寵之常典. 而特以追之國·貊之邦, 示之以率舊之殊遇, 則此非爵秩之所可比, 服命之所可論也. 于壃于理, 至于海甸. 實墉實壑, 率彼遐裔, 有倬其道, 受命而還, 則有是哉, 孔樂韓土也.
臣請拜稽而申之, 蓋追·貊, 夷狄國名也. 惟彼二國, 介乎蠻鄕, 而召祖受命, 由是百蠻, 則其在寵賚後昆也, 曷不因是而殊錫乎. 是以韓侯之始覲也, 審其祖基命之地, 而表而寵之, 纘其祖定命之業, 而別而慶之. 因以其伯, 而賴及子孫, 廣拓其封, 而遹修侯服, 特錫追貊之義, 良以是夫. 然則恢乎紘綖, 非無樂土, 而論其韓侯之加錫, 則固無追貊之可比也. 溥彼韓城, 地非不足, 而觀其韓侯之寵賚, 則可知基業之攸貴也. 由是觀之, 于邑于韓, 而王纘之事, 其追其貊, 而恩覃于遐. 以區區韓侯之小, 而施之以曠絶之恩, 以蠢蠢蠻方之遠, 而屬之以朝覲之日, 葩經揭說, 槩可想矣. 抑又論之, 召虎之錫土田, 江漢浮浮, 申伯之封于謝, 至于南海, 非不爲功烈之盛·壃域之大, 而惟此追貊, 雖以蠻夷之鄕, 而旣爲繼先之典, 則揆以召虎之江漢·申伯之南海, 不亦深且摯乎. 嗚乎, 其來覲也, 戒之以纘戎祖考, 其錫土也, 申之以先祖受命, 是知其文武受命, 召公維翰, 而韓侯受命, 召公是似也. 吁, 臣謹義.
① 將 : 원문에는 ‘捋(랄)’로 되어 있으나, 문의에 따라 ‘將(장)’으로 고쳤다.
제목 없음
【시제】
「詩義 ‘其追其貊’」 「시의(詩義)① ; 추(追) 족속의 나라요, 맥(貊) 족속의 나라로다.」②
【본문 - 번역문】
아, 주(周)나라 천자께서 제후국(諸侯國)의 임금을 봉할 적에 은사(恩賜)하는 물건이 일정하지 않았으니, 곧 노(魯)나라 임금에게 명하였을 때는 산천과 토지와 부용국(附庸國)을 하사하였고,③ 진 문후(晉文侯) 의화(義和)에게 명하였을 때는 ‘그대에게 검은 울창주와 검은 활과 화살 1,000개를 주노라.’라고 하였습니다.④ 그런데 한후(韓侯)⑤가 천자에게 조근(朝覲)하러 들어왔을 때는 오랑캐의 나라⑥를 하사하였으니, 무슨 까닭이었겠습니까.
아, 만이(蠻夷)의 오랑캐 족속이 무수히 많으며 황폐한 불모의 땅이 아득히 펼쳐져 있는데, 한후(韓侯)의 선조(先祖)가 이들 오랑캐 족속으로 인하여 천자로부터 명을 받았습니다.⑦ 그리하여 (한후가) 지금 높고 큰 양산(梁山)⑧에서 처음 임금이 되어 조근하러 왔는데, 추 족속의 나라와 맥 족속의 나라를 하사한 것은 역시 ‘(소호(召虎)가) 기주(岐周)에 가서 명을 받은 것은 할아버지 소공(召公)이 명을 받았던 곳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는 사실과 부합되는 점이 있지 않겠습니까.⑨ 그렇다면 추 지역과 맥 지역은 여러 오랑캐 족속[百蠻]의 지역에 속해 있으며, 선조의 기업(基業)은 이미 이 지역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하니, 지금 한후에게 내린 명에서 반드시 이 지역의 땅을 하사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옛날의 유서(遺緖)를 잇지 않은 것이 없으며, 또한 장차 공훈을 더 많이 세우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알겠으니, ‘나라를 편안히 다스리는 제후에게 말[馬]을 많이 하사함’⑩과 ‘길경(吉慶)한 군대에게 왕이 세 차례나 은명을 내림’⑪은 천자가 내리는 통상적인 전례(典禮)의 은총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추라는 나라와 맥이라는 나라를 하사하여 옛날의 유서를 따른다는 특수한 대우를 보여주었으니, 이는 작질(爵秩)로써 비교할 바가 아니고 복명(服命)⑫으로써 논할 바가 아닙니다. (소호의 경우) 경계를 다스리고 토지를 다스려서 남쪽 해변의 땅에 이르렀고,⑬ 실로 성을 쌓고 실로 해자를 파서⑭ 아득히 먼 지역을 거느렸습니다. 한후는 밝은 길을 따라서 천자로부터 명을 받고 돌아왔으니,⑮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매우 즐겁구나, 한나라의 땅이여[孔樂韓土]’⑯라고.
신은 청컨대 절하고 머리 조아리며 거듭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개 추(追)와 맥(貊)은 오랑캐[夷狄] 나라의 이름입니다. 생각건대 저 두 나라는 야만족들의 고장에 끼어 있었는데, 할아버지 소공(召公)이 명을 받은 것은 이들 여러 오랑캐 족속[百蠻]에 말미암았습니다.⑰ 그러니 천자가 그의 후손에게 총애를 베풂에는 어찌 그 옛일을 따라서 특수하게 하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한후가 처음 조근하였을 적에, 처음 명을 받은 그 선조의 땅⑱을 살펴보아서 표창하여 은총을 내렸고, 천명을 안정시킨 그 선조의 기업(基業)⑲을 이어주어서 별도로 경행(慶幸)스럽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곳의 패자가 되었으니⑳ 은덕이 자손에게 미치었으며, 그 봉읍(封邑)을 널리 개척하여 먼 변방을 다스렸습니다. 특별히 추와 맥을 하사해준 의리는 참으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경계(境界)를 확장한 곳은 즐거운 땅이 아님이 없는데, 한후에게 더 보태어 하사한 것을 논한다면 실로 추와 맥은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저 광대한 한(韓)나라의 성시(城市)㉑는 땅이 부족한 것이 아니니,㉒ 한후에게 은총을 내려준 바를 보면 기업(基業)을 소중히 여김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보건대 한(韓)에 도읍을 만들어서 천자는 선조의 사업을 계승하도록 해주었고,㉓ 추나라를 하사하고 맥나라를 하사하여 은혜가 먼 지방에까지 미치었습니다. 보잘것없는 한후의 미미한 존재임에도 세상에 다시없는 은혜를 입혀주었고, 어리석고 무지한 먼 남쪽 야만의 지역임에도 조근하는 날에 회합하게 하였으니, 『시경』에서 해설을 보여준 일은 대개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논하건대, 소호(召虎)에게 토지를 하사하였는데㉔ 장강(長江)과 한수(漢水)가 넘실넘실 흘렀고,㉕ 신백(申伯)을 사(謝) 지역에 봉했는데 남쪽의 해변에까지 이르렀으니,㉖ 그 공렬이 성대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그 강토가 광대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한편 이 추나라와 맥나라의 경우만은, 비록 오랑캐의 고장이지만 이미 선조의 전례(典禮)를 계승하였으니, 장강·한수 지역의 소호(召虎)와 남해 지역의 신백(申伯)과 비교해보더라도 역시 그 총애가 깊고도 정성스럽지 않겠습니까.
아, 한후가 조근하러 왔을 적에는 경계하기를 ‘그대의 조고(祖考)를 잇게 하노라’㉗라고 하였고, 그에게 토지를 하사할 적에는 ‘선조가 (오랑캐 족속들로 인하여) 명을 받았던 일[先祖受命]’을 거듭 말하였습니다. 이로써 ‘문왕(文王)·무왕(武王)이 명을 받음에는 소공 석(召公奭)이 보위하였는데,㉘ 한후가 명을 받음[韓侯受命]㉙은 소공 석의 업적을 계승하는 것㉚이라는 사실’을 알겠습니다.
아, 신은 삼가 시의(詩義)를 작성하였습니다.
①시의(詩義) : 과거시험에서 시경의 한 대목에 대한 글 뜻을 해설하는 제술시험(製述試驗) 곧 글짓기 시험이다. 유가(儒家)의 오경(五經) 중의 한 문구에 대한 뜻풀이 시험을 ‘경의(經義)’라 이르는데, ‘시의’는 오경 중 『시경』의 문구에 대한 뜻풀이 시험을 이른다.
②추(追) 족속의 …… 나라로다 : 이는 『시경』 「한혁(韓奕)」에서 따온 말인데,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선조의 명령을 받음이 이 많은 오랑캐들로 인했다 하여, 천자께서 한후에게 내려주셨으되 추 족속의 나라요 맥 족속의 나라로다. 문득 북쪽의 나라를 받아서 그 패자가 되었으니, 실로 성을 쌓고 해자를 팠으며 전지를 다스리고 세금을 거두었네.”〔『詩經』 「大雅·韓奕」, “以先祖受命, 因時百蠻, 王錫韓侯, 其追其貊. 奄受北國, 因以其伯. 實墉實壑, 實畝實籍.”〕
③ 노(魯)나라 임금에게 …… 하사하였고 : 『시경』 「비궁(閟宮)」에 보이는 말인데, 이는 주나라 성왕(成王)이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을 노나라에 봉할 때의 일이다.〔『詩經』 「魯頌·閟宮」, “乃命魯公, 俾侯於東, 錫之山川, 土田附庸.”〕 ‘부용국(附庸國)’은 ‘큰 제후국에 종속된 작은 나라’를 이른다. 부용(附庸)·부국(附國).
④ 진 문후(晉文侯) 의화(義和)에게 …… 하였다 : 『서경』 「문후지명(文侯之命)」의 구절을 변용한 말인데, 이는 주나라 평왕(平王)이 진(晉)나라 문후(文侯)를 방백(方伯)으로 삼을 때의 일이다.〔『書經』 「周書·文侯之命」, “王曰, 父義和, 其歸視爾師, 寧爾邦. 用賚爾秬鬯一卣·彤弓一·彤矢百·盧弓一·盧矢百·馬四匹.”〕
⑤ 한후(韓侯) : 『시경』 「한혁(韓奕)」의 주인공으로서 주나라의 제후국인 한(韓)나라의 임금이다. 주 무왕(周武王; 姬發)의 후손인데, 주나라 선왕(宣王; 재위 B.C.824-782) 때 아버지의 지위를 습봉(襲封)하고 주나라에 조근(朝覲)하였다. 그가 조근하고 돌아갈 때 시인이 전송하며 지은 시가 곧 「한혁」이다.
⑥ 오랑캐의 나라 : 추(追) 족속의 나라와 맥(貊) 족속의 나라를 이른다. 앞의 각주 2) ‘추(追) 족속의 …… 나라로다’ 참조.〔『詩經』 「大雅·韓奕」, “王錫韓侯, 其追其貊. 奄受北國.”〕
⑦ 한후(韓侯)의 선조(先祖)가 …… 명을 받았습니다 : 원문 ‘惟爾先祖, 因是而受命(유이선조, 인시이수명)’을 옮긴 말인데, 이는 『시경』 「한혁(韓奕)」에서 따온 말이다. 앞의 각주 2) ‘추(追) 족속의 …… 나라로다’ 참조.〔『詩經』 「大雅·韓奕」, “以先祖受命, 因時百蠻.”〕 ‘한후(韓侯)의 선조(先祖)’는 주나라 초기에 처음으로 한나라의 제후로 피봉(被封)된 한나라의 선조를 이른다. 원문에서 ‘이(爾; 그대)’라고 표현한 한후는 「한혁」의 주인공으로, 주나라 선왕(宣王) 때의 인물이다. 앞의 각주 6) 참조.
⑧ 높고 큰 양산(梁山) : 『시경』 「한혁」의 구절 “높고 큰 양산을 우임금께서 다스렸지.”에서 따온 말이다.〔『詩經』 「大雅·韓奕」, “奕奕梁山, 維禹甸之.”〕 ‘양산’은 한(韓)나라의 진산(鎭山)으로, 제일 높고 큰 산이다. 본문에서의 ‘양산’은 ‘한나라의 대칭(對稱)’으로 사용되었다.
⑨ (소호(召虎)가) …… 그대로 따른 것 : 원문 ‘于周受命, 自召祖命者.(우주수명, 자소조명자.)’를 옮긴 말인데, 이는 『시경』 「강한(江漢)」의 구절 “(소호가) 기주(岐周)에 가서 명을 받았으니, 할아버지 소공(召公)이 명을 받았던 일을 따랐네.”를 인용한 표현이다.〔『詩經』 「大雅·江漢」, “于周受命, 自召祖命.”〕 ‘소호(召虎)’는 소목공(召穆公)으로, 이름이 호(虎)인데, 소공의 후손이다. 그가 주나라 선왕(宣王)의 명을 받아 회이(淮夷)를 정벌하고 칭송받은 사실이 『시경』 「강한」에 보인다. ‘소공(召公)’은 ‘소강공(召康公) 석(奭)’으로, 주공(周公)의 아우이자 성왕(成王)의 숙부인데, ‘강공(康公)’·‘소백(召伯)’ 등으로도 일컬어진다. ‘강(康)’은 그의 시호이다.
⑩ 나라를 편안히 …… 많이 하사함 : 원문 ‘康侯之錫馬蕃庶(강후지석마번서)’를 옮긴 말로, 『주역』 「진괘(晉卦)」에서 따다 쓴 표현이다.〔『周易』 「晉卦」, “晉, 康侯用錫馬蕃庶.”〕
⑪ 길경(吉慶)한 군대에 …… 은명을 내림 : 원문 ‘吉師之王三錫命(길사지왕삼석명)’을 옮긴 말로, 『주역』 「사괘(師卦)」에 보이는 구절을 원용한 것이다.〔『周易』 「師卦」, “九二, 在師中吉, 无咎, 王三錫命.”〕
⑫ 복명(服命) : 복식(服飾)과 작록(爵祿) 등을 이른다.
⑬ 경계를 다스리고 …… 땅에 이르렀고 : 원문 ‘于壃于理, 至于海甸.(우강우리, 지우해전.)’을 옮긴 말로, 『시경』 「강한(江漢)」의 구절에서 따온 표현이다. 이는 소호(召虎)의 업적을 묘사한 구절이다.〔『詩經』 「大雅·江漢」, “于疆于理, 至于南海.”〕 ‘경계를 다스리고 토지를 다스린다’는 뜻의 ‘강리(疆理)’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⑭ 실로 성을 쌓고 실로 해자를 파서 : 원문 ‘實墉實壑(실용실학)’을 옮긴 말로, 『시경』 「한혁」의 구절인 “(한후가) 실로 성을 쌓고 해자를 파며 전지를 다스리고 세금을 거두었네.”에서 따온 것이다.〔『詩經』 「大雅·韓奕」, “實墉實壑, 實畝實籍.”〕
⑮ 밝은 길을 따라서 …… 돌아왔으니 : 원문 ‘有倬其道, 受命而還.(유탁기도, 수명이환.)’을 옮긴 말로, 『시경』 「한혁」의 구절 “밝은 길을 따라서 한후가 명을 받았네.”를 변용한 것이다.〔『詩經』 「大雅·韓奕」, “有倬其道, 韓侯受命.”〕
⑯ 매우 즐겁구나, 한나라의 땅이여[孔樂韓土] : 『시경』 「한혁」의 구절을 그대로 따다 쓴 것이다.〔『詩經』 「大雅·韓奕」”〕
⑰ 할아버지 소공(召公)이 …… 말미암았습니다 : 이는 원문 ‘召祖受命, 由是百蠻.(소조수명, 유시백만.)’을 번역한 말인데, 이는 「한혁」의 구절 ‘以先祖受命, 因時百蠻.(이선조수명, 인시백만.)’을 변용하여 앞에서 서술한 말 ‘惟爾先祖, 因是而受命.(유이선조, 인시이수명.)’을 반복한 것이다. 앞의 각주 8) 참조. 그러나 ‘할아버지 소공(召公)’은 실은 『시경』 「강한」에 보이는 인물이다.
⑱ 처음 명을 받은 그 선조의 땅 : 원문 ‘其祖基命之地(기조기명지지)’를 번역한 말인데, ‘기명(基命)’은 대개 ‘임금이 처음 천명을 받아 왕위에 나아감’을 이른다.〔『書經』 「洛誥」, “王如弗敢及天基命定命.”〕
⑲ 천명을 안정시킨 그 선조의 기업(基業) : 원문 ‘其祖定命之業(기조정명지업)’을 번역한 말인데, ‘정명(定命)’은 대개 ‘받은 천명을 완성하여 안정시킴’을 이른다.〔『書經』 「洛誥」, “王如弗敢及天基命定命, 予乃胤保大相東土, 其基作民明辟.”〕
⑳ 그리하여 그곳의 패자가 되었으니 : 원문 ‘因以其伯(인이기백)’을 옮긴 말로, 『시경』 「한혁」의 구절 “문득 북쪽 나라를 받아서 그 패자가 되었네.”에서 따다 쓴 것이다.〔『詩經』 「大雅·韓奕」, “奄受北國, 因以其伯.”〕
㉑ 저 광대한 한(韓)나라의 성시(城市) : 원문 ‘溥彼韓城(부피한성)’을 번역한 말로, 『시경』 「한혁」의 구절에서 따다 쓴 것이다.〔『詩經』 「大雅·韓奕」, “溥彼韓城, 燕師所完.”〕
㉒ 땅이 부족한 것이 아니니 : 원문 ‘地非不足(지비부족)’을 옮긴 말인데, 『맹자』에서 따다 쓴 것이다.〔『孟子』 「告子下」, “周公之封於魯, 爲方百里也, 地非不足.”〕
㉓ 한(韓)에 도읍을 …… 계승하게 하였고 : 원문 ‘于邑于韓, 而王纘之事.(우읍우한, 이왕찬지사.)’를 번역한 말로, 『시경』 「숭고(崧高)」의 구절 “부지런히 애쓰는 신백(申伯)을 천자께서 선대의 일을 계승하게 하였으니, 사(謝) 땅에 도읍하여 남방이 본받도록 하였네.”를 변용한 것이다.〔『詩經』 「大雅·崧高」, “亹亹申伯, 王纘之事. 于邑于謝, 南國是式.”〕 ‘신백’은 주나라 선왕(宣王)의 외숙이자 선왕 때의 현상(賢相)으로, 사(謝) 땅에 봉함을 받아 그곳에 성을 쌓고 남토(南土)를 잘 지켰다.
㉔ 소호(召虎)에게 토지를 하사하였는데 : 원문 ‘召虎之錫土田(소호지석토전)’을 옮긴 말인데, 『시경』 「강한(江漢)」의 구절을 인용한 표현이다. 해당 문구의 전후 맥락은 다음과 같다. “(천자께서) 그대[召虎]에게 규찬(圭瓚)과 검은 기장술 한 동이를 내려주면서, 문덕이 있는 선조에게 고하여 산천과 토지를 하사하노라. (소호가) 기주(岐周)에 가서 명을 받았으니 할아버지 소공(召公)이 명을 받았던 일을 따랐네. 소호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천자께서 만세 누리시기를 축원했네,”〔『詩經』 「大雅·江漢」, “釐爾圭瓚, 秬鬯一卣. 告于文人, 錫山土田. 于周受命, 自召祖命. 虎拜稽首, 天子萬年.”〕
㉕ 장강(長江)과 한수(漢水)가 넘실넘실 흘렀고 : 『시경』 「강한(江漢)」의 구절 “장강과 한수가 넘실넘실 흐르는데, 무부가 굳세고 굳세구나.”에서 따온 표현이다.〔『詩經』 「大雅·江漢」, “江漢浮浮, 武夫滔滔.”〕 ‘강한(江漢)’은 『시경』의 편명인데, 원래는 ‘장강(長江)’과 ‘한수(漢水)’를 뜻하는 말이다.
㉖ 신백(申伯)을 …… 이르렀으니 : 원문 ‘申伯之封于謝, 至于南海.(신백지봉우사, 지우남해.)’를 옮긴 말인데, 이는 『시경』 「숭고(崧高)」의 구절 “사(謝) 땅에 도읍하여 남방이 본받도록 하였네” “천자께서 신백에게 명하여 남방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였네.” 등을 차용한 표현이다.〔『詩經』 「大雅·崧高」, “于邑于謝, 南國是式. …… 王命申伯, 式是南邦.”〕
㉗ 그대의 조고(祖考)를 잇게 하노라 : 원문 ‘纘戎祖考(찬융조고)’를 옮긴 말로, 『시경』 「한혁」의 구절 “천자께서 친히 명하기를 그대의 조고를 계승하게 하노라.”에서 따다 쓴 것이다.〔『詩經』 「大雅·韓奕」, “王親命之, 纘戎祖考.”〕
㉘ 문왕(文王)·무왕(武王)이 …… 보위하였는데 : 원문 ‘文武受命, 召公維翰.(문무수명, 소공유한.)’을 옮긴 말로, 『시경』 「강한」의 구절을 따다 쓴 것이다.〔『詩經』 「大雅·江漢」, “文武受命, 召公維翰.”〕
㉙ 한후가 명을 받음[韓侯受命] : 앞의 각주 16) 참조.
㉚ 소공 석의 업적을 계승하는 것 : 원문 ‘召公是似(소공시사)’를 옮긴 말이다. 이는 『시경』 「강한」의 구절 “나 소자라고 하면서 겸양하지 말고, 소공의 업적을 계승하라.”에서 따다 변용한 것이다.〔『詩經』 「大雅·江漢」, “無曰予小子, 召公是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