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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6_01_A00662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증빙류-시권(試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74년 권한인 시권 / 權漢仁 試券
- ㆍ발급자
-
권한인(權漢仁)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69 × 190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권한인(權漢仁; 37세)의 1774(영조 50) 진사시 초시(추정) ‘문견여등구층대(聞見如登九層臺)’ 부 시권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국학진흥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권한인(權漢仁; 37세)의 1774(영조 50) 진사시 초시(추정) ‘문견여등구층대(聞見如登九層臺)’ 부 시권이다.
제목 없음
【시제】
「‘聞見如登九層臺’賦」
【본문 - 원문】
01.飮河返而誕岸,
闢廣居而高堅.
02.無地起而九仞,
與道通而千門.
03.推極工於陟彼,
悟爲學之循序.
04.撟縕知之卓爾,
喩造詣之屹如.
05.原吾學之進步,
䙡見聞之日就.
06.儀升堂而目寓,
體登泰而耳提.
07.參古今而益廣,
有如彼兮高大.
08.班程法其有序,
所以證之云何.
09.高臺闢以九級,
人自下而登之.
10.心翼翼而漸進,
躋層層而高處.
11.逌一步之不已,
導爾之兮拯①彼.
12.援乎此而較學,
雖異事而同榘.
13.瞻周學而緝熙,
鼓湯聖而日躋.
14.謇時敏而月將,
履層臺而不頗.
15.聰明開於自卑,
學識宏於升高.
16.指聖域而出門,
陟仁山而崇階.
17.繽由堂而入室,
次第開以門戶.
18.推進竿於運步,
驗登梯於履九.
19.遵邵樓而逈眺,
里宣墻而高峙.
20.回漸磨於主一,
耆極功於致遠.
21.天君穆其履坦,
與靈臺而齊高.
22.肆河南之𥇕此,
勔後學而毋怠.
23.蹟先賢之牖學,
攬進工而善喩.
24.繽垂戒於躐等,
摠眎訓於漸次.
25.惟程門之施敎,
顝有說於篤學.
26.回銘盤之自新,
譬登臺之深域.
27.工自成於陟高,
言不誣於詔後.
28.爰引此而證彼,
曉走作於冥衢.
29.知功化之卽有,
若天成之自然.
30.台千載而嘐嘐,
仰彼臺而勉進.
① 拯 : 원문에는 ‘極(극)’으로 되어 있으나, 문의에 비추어 ‘拯(증)’으로 고쳐 번역하였다.
제목 없음
【시제】
「‘문견(聞見)을 함에도 마치 9층의 누대에 오르는 것과 같이 단계를 지켜야 한다.’①라고 한 말을 두고 읊은 부」
【본문 - 번역문】
01.황하의 물을 마시고 돌아와② 먼저 도의 지극한 경지에 올랐으니,③
인(仁)이라는 집④을 짓되 높다랗게 하고 튼튼하게 하였네.
02.아홉 길 누대를 세울 땅이 없어도,
도와 통하여 천 개의 문이 있다네.
03.지극한 공부를 확충하여 저 도의 경지에 오르니
공부를 함에 차례를 따르는 법 깨달았도다.
04.심오한 지식을 거두어 모음이 탁월하였으니,
나아간 도의 경지가 우뚝함을 비유하였네.
05.우리의 학문이 진보한 이유를 파헤쳐 보니
견문이 나날이 발전함⑤을 귀하게 여긴 때문이지.
06.마루에 오름⑥을 목표로 삼았으니 눈으로 그 좌우명을 보았고,
태산에 오름⑦을 본받았으니 귀 붙잡아 타이름을 들었었네.
07.옛날과 지금의 일을 참고하여 견문을 더욱 넓혔으니,
저와 같이 높고 큰 누대가 있게 되었네.
08.정자(程子)의 공부법을 등급 지움에 순서가 있게 되었으니,
증험하는 방법이 어떠했던가.
09.높다란 누대를 9층으로 만들었으니,
사람들은 낮은 층에서부터 올라가지.⑧
10.조심하고 조심하며⑨ 차츰차츰 나아가서
한 층 오르고 또 한 층 올라 높은 곳에 있게 됐네.
11.한 걸음도 멈추지 않아야만
그대들을 인도하여 백성들을 구제하리라.
12.이것을 끌어다가 배움에 견주어보면
비록 일이 다르지만 법칙은 같다네.
13.주(周)나라 임금의 배움을 우러러보아 광명한 경지에 이르고⑩
탕(湯)임금에 고무되어 성경(聖敬)의 덕이 날로 발전하는구나.⑪
14.배움은 언제나 민첩하게 하는 데 힘써서⑫ 다달이 진보한다면⑬
층층의 누대를 올라가되 기울어져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15.총명함이 낮은 데서부터 열리게 되어
학식이 높은 데 올라가 풍부해지리라.⑭
16.성인의 경지를 지향하면서 문호를 나서서
인(仁)이라는 산에 올라 높은 단계에 올랐네.
17.성대하게 마루를 거쳐서 내실에 들어갔으니,⑮
차례차례로 문호를 열었구나.
18.추광(推廣)하여, 백척간두에서 나아가⑯ 발걸음을 옮겼으니,
사다리를 타고 점차 올라가 9층에 이르렀음을 징험하겠네.
19.소강절(邵康節)의 거처⑰를 따라서 멀리 조망하고
공자의 담장을⑱ 이웃하여 높이 솟았네.
20.마음이 전일하게 되도록 점차 갈고 닦았으니
지극한 성과를 이루어 먼 경지에 이르렀네.
21.마음은 탄탄대로를 따라가면서 경건하니,
탄탄대로도 마음이 거처하는 집과 더불어 나란히 높구나.
22.이에 하남의 두 정자(程子)⑲께서 이를 주목하고
후학들을 권면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게 하였네.
23.배움을 일깨워준 선현들의 자취를 따르는 한편
진덕(進德)의 공부를 거두어 잡아 잘 표현하였네.
24.차례를 뛰어넘는 공부를 대단히 경계하였고
차츰차츰 나아갈 것을 총괄하여 훈시하였네,
25.정자의 문호에서 가르침을 베풀 적에
독실한 배움에 대해 특별히 말하였다네.
26.대야[盤]에 명(銘)을 새겨 자신을 새롭게 진작했으니,⑳
깊은 경지에 이르도록 높은 누대에 올랐음을 비유하였네.
27.공부는 높은 경지에 오르는 데서 저절로 이루어지고
말씀은 후진을 가르침에 속임이 없었다네.
28.이에 이것을 끌어다가 저것을 증명한다면
새벽부터 어두운 대로에서 사단을 일으키지만,
29.공업과 교화가 당장 눈앞에 있음을 알고 있다면
하늘이 만들어서 저절로 그렇게 된 것과 같다네.
30.천년의 세월을 이어 큰소리를 치면서
저 누대를 우러러보고 전진하기를 힘쓴다네.
① 문견(聞見)을 함에도 …… 지켜야 한다 : 『이정유서(二程遺書)』 등에 보이는 말이다.〔『二程遺書』 권6, “聞見如登九層之臺.”〕
② 황하의 물을 마시고 돌아와 : ‘황하의 물을 마신다’ 함은 ‘자신의 분수에 만족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장자』에서 “뱁새가 깊은 숲에 둥지를 틀더라도 의지하는 것은 나뭇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고, 생쥐가 황하의 물을 마시더라도 제 배를 채우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라 하였는데, 본문의 말은 이를 원용한 것이라 생각된다.〔『莊子』 「逍遙遊」, “鷦鷯巢於深林, 不過一枝, 鼴鼠飮河, 不過滿腹.”〕
③ 먼저 도의 지극한 경지에 올랐으니 : 원문 ‘誕岸(탄안)’을 옮긴 말인데, 이는 『시경』의 ‘誕先登于岸’을 줄인 말이라 이해된다. 『시경』에서 읊은 원문의 맥락은 다음과 같다. “상제께서 문왕에게 이르시기를 ‘이처럼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잡지 말며, 이처럼 흠모하고 부러워하지 말아서, 크게 먼저 도의 경지에 오르라’ 하셨느니라.”〔『詩經』 「大雅·皇矣」, “帝謂文王, 無然畔援, 無然歆羨, 誕先登于岸.”〕
④ 인(仁)이라는 집 : 원문 ‘廣居(광거)’를 옮긴 말이다. 『맹자』에 “천하의 넓은 집인 인(仁)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인 예(禮)에 입각하며, 천하의 대도인 의(義)를 행한다.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도를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한다.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며, 빈천이 절개를 옮기지 못하며, 위무도 굴복시키지 못하니, 이런 사람을 대장부라고 한다.”라는 말이 보인다.〔『孟子』 「滕文公下」,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與民由之, 不得志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⑤ 나날이 발전함 : 원문 ‘日就(일취)’를 옮긴 말인데, 그 출처는 『시경』이다.〔『詩經』 「周頌‧敬之」, “日就月將, 學有緝熙于光明.”〕
⑥ 마루에 오름 : 원문 ‘升堂(승당)’을 옮긴 말로, ‘학문의 높은 경지에 오름’을 비유한다. 『논어』에 “공자가 이르기를 ‘자로(子路)의 경우 마루에는 올랐으나, 아직 내실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라는 말이 보인다.〔『論語』 「先進」, “子曰, 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
⑦ 태산에 오름 : “공자가 동산에 올라가서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가서 천하를 작게 여겼다.”라는 말이 『맹자』에 보인다.〔『孟子』 「盡心上」, “孔子登東山而小魯, 登泰山而小天下.”〕
⑧ 낮은 층에서부터 올라가지 : 원문 ‘自下而登之(자하이등지)’를 옮긴 말인데, 이는 『중용』에 보이는 ‘등고자비(登高自卑)’를 변용한 표현이라 이해된다. 『중용장구』에서 이르기를, “군자의 도는 비유하자면 마치 먼 데를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시작하고, 높은 데를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로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다.”라 하였다.〔『中庸章句』 第15章 “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⑨ 조심하고 조심하며 : 원문 ‘翼翼(익익)’을 옮긴 말로, 『시경』에 보이는 말이다.〔『詩經』 「大雅·大明」, “惟此文王, 小心翼翼.”〕
⑩ 주(周)나라 …… 경지에 이르고 : 『시경』에 의하면, 주나라 성왕(成王)이 신하들로부터 경계의 말을 듣고 “나 소자가 총명하지 못하여 공경하지 못하지만, 나날이 나아가고 다달이 진보하여 학문이 계속해 밝아져 광명함에 이르겠노라.”고 하여, 배움에 열중할 뜻을 나타내었다.〔『詩經』 「周頌‧敬之」, “維予小子, 不聰敬止, 日就月將, 學有緝熙于光明.”〕
⑪ 탕(湯)임금에 …… 발전하는구나 : 『시경』에서 읊기를 “탕임금의 탄생이 늦지 않으시며 성경이 날로 진전되었다.”라 하면서 그 덕을 묘사하였다.〔『詩經』 「商頌‧長發」, “湯降不遲, 聖敬日躋.”〕
⑫ 배움은 언제나 민첩하게 하는 데 힘써서 : 『시경』에서 이른바 “배움은 뜻을 겸손하게 해야 하거니와, 언제나 민첩하게 함에 힘쓰면 그 수양의 결과가 나타날 것이니, 독실히 믿어 이것을 생각하면 도가 그 몸에 쌓일 것이다.”라는 말을 원용한 구절이다.〔『書經』 「商書‧說命下」, “惟學遜志, 務時敏, 厥修乃來, 允懷于玆, 道積于厥躬.”〕
⑬ 다달이 진보한다면 : 앞의 각주 11) ‘주(周)나라 …… 경지에 이르고’ 참조.
⑭ 총명함이 …… 풍부해지리라 : 앞의 각주 8) ‘낮은 층에서부터 올라가지’ 참조.
⑮ 마루를 거쳐 내실에 들어갔으니 : ‘마루[堂]’와 ‘내실[室]’은 학문의 깊이를 이르는 말이다. 『논어』에서 공자가 이르기를 “자로(子路)의 경우 마루에는 올랐으나, 아직 내실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는데, 본문은 이 말을 인용한 것이다. 공자의 이 말에 딸린 형병(邢昺)의 「소(疏)」에 의하면, 자로에 비해 안연(顔淵)은 내실에까지 들어간 경지의 사람이었다.〔『論語』 「先進」, “子曰, 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 <疏> 入室為深, 顏淵是也, 升堂次之, 子路是也.”〕
⑯ 백척간두에서 나아가 : 원문 ‘進竿(진간)’을 옮긴 말인데, 이는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한층 더 노력하여 더욱 큰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의미의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를 변형한 말이라 이해된다. 주자가 진동보(陳同甫)에게 보낸 서찰에서 “그대는 백 척의 장대 끝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것이며, 장차 삼대 이하의 인물이 되지 말라.[賢者, 百尺竿頭進取一步, 將來不作三代以下人物.]”라고 이른 말이 보인다.〔『朱子大全』 권36, 「答陳同甫」〕
⑰ 소강절(邵康節)의 거처 : 원문 ‘邵樓(소루)’를 옮긴 말로, 송(宋)나라 소강절(邵康節) 곧 소옹(邵雍)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즐겼던 안락와(安樂窩)를 이른다. 그가 처음 낙양(洛陽)에 왔을 때 비바람도 제대로 막지 못하는 오두막을 한 채 지어 살며 자주 쌀독이 비어서 굶는 생활[屢空]을 하면서도 유유자적하면서 스스로 안락 선생(安樂先生)이라고 일컬었다는 고사가 있다.〔『宋史』 卷427, 「邵雍列傳」〕
⑱ 공자의 담장 : ‘스승의 집’ 또는 ‘스승’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춘추시대 노(魯)나라 대부 숙손무숙(叔孫武叔)이 자공(子貢)을 공자보다 더 훌륭하다고 말한 데 대하여, 자공이 이르기를 “집의 담장에 비유하면, 나의 담장은 어깨에 닿을 정도여서 집 안의 좋은 것들을 다 엿볼 수 있지만, 스승의 담장은 두어 길이나 되어서 그 문을 통하여 들어가지 않으면 아름다운 종묘와 수많은 백관을 볼 수가 없다.”라고 한 데서 따온 말이다.〔『論語』 「子張」, “叔孫武叔語大夫於朝曰, 子貢賢於仲尼. 子服景伯以告子貢, 子貢曰, 譬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百官之富.”〕
⑲ 두 정자(程子) : ‘정자’는 북송의 이학가(理學家)인 정호(程顥; 1032-1085)와 정이(程頤; 1033-1107) 형제를 높여서 이르는 말이다. 모두 낙양(洛陽) 사람으로, 정호는 자가 백순(伯淳)이고 (明道先生)이라 불렸으며, 정이는 자가 정숙(正叔)이고 이천선생(伊川先生)이라 불렸다. 두 사람을 아울러서 ‘이정(二程)’이라 이른다.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颐; 1017-1073)에게서 배웠으며, 송대 이학(理學)의 기초를 닦았다. 남송의 주희(朱熹; 1130-1200)가 이들의 학설을 이어받아 송대의 이학을 집대성하였다. 유저로 이정집(二程集)이 있다.
⑳ 대야[盤]에 …… 진작했으니 : 탕(湯)임금의 대야에 새겨진 명문(銘文)에 이르기를 “만약 어느 날 새롭게 되었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라.”라 하였다.〔『大學章句』 傳2章, “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