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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6_01_A00653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증빙류-시권(試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8년 권교정 시권 / 權敎正 試券
- ㆍ발급자
-
권교정(權敎正)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83 × 18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권교정(權敎正; 42세)의 1848(헌종14) 증광진사시 초시 ‘영봉고작명당여대도(令奉高作明堂如帶圖)’ 부(賦) 시권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국학진흥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권교정(權敎正; 42세)의 1848(헌종14) 증광진사시 초시 ‘영봉고작명당여대도(令奉高作明堂如帶圖)’ 부(賦) 시권
제목 없음
【시제】
「‘令奉高作明堂如帶圖’賦」
【본문 - 원문】
01.纘皇祖而肯堂,
御四葉而圖治.
02.闢新墟於朱虛,
得古制於黃帝.
03.吾必作於汶上,
帶之圖兮依舊.
04.第於斯而經始,
寔遵汝之制度.
05.祀事備於我漢,
每儀圖於明堂.
06.修五禮而自我,
象九室而無證.
07.經塵劫於暴秦,
只遺墟於東垈.
08.臣帶俄其獻圖,
以軒皇之遺制.
09.臾區讖於得鼎,
岐伯禮於封泰.
10.茅以蓋而水圜,
畵堂堂於一幅.
11.皇於是乎欲致,
詔奉高使相宅.
12.地琅琊而接界,
樓崑崙而複道.
13.汶波濶以一帶,
況夫子之攸居.
14.明斯堂而築斯,
帝曰咨汝臣哉.
15.周公於斯以祀,
亞聖所以勿毁.
16.由舊章而刱新,
面春風而省識.
17.功伐木而作材,
人攻玉而遵式.
18.求規矱之所同,
寔分明於八牕.
19.儀夏屋於澤裏,
倣周臺於沼上.
20.東南闢以九莚,
遵繩墨而不頗.
21.宮未央而在都,
殿太極而其下.
22.登登築而尙圖,
古之制而今有.
23.登遺篇而上下,
訪餘徽於圖畵.
24.彪夙著於昭視,
奧默縕於密牖.
25.文刊徵於往陳,
誼覷煥於來許.
26.非濩潏之是尙,
儘腆美其足儀.
27.由前軌而騭評,
逖後辰而儀圖.
28.芬餘菀於詔來,
采悉烈於徵古.
29.掞弘馥而載敷,
沛申複而周章.
30.濡余毫而綴蕪,
仰圖儀之攸尙.
제목 없음
【시제】
「‘봉고현(奉高縣)에 명하여 명당(明堂)을 공옥대(公玉帶)의 도면과 똑 같이 짓도록 하였다’①라는 부」
【본문 - 번역문】
01.한고조(漢高祖)의 뒤를 이어서 제업(帝業)을 잘 계승하였으니,
4대(代) 동안 군림하며 치세(治世) 이루기를 도모했지.
02.주허(朱虛)②의 땅에서 신허(新墟; 새 터)를 열었으니,
황제(黃帝)로부터 옛 제도를 얻었다네.
03.나는 틀림없이 문수(汶水) 가에 명당을 지을 텐데,
공옥대의 명당도(明堂圖) 도면③이여, 옛 제도를 따랐구나.
04.우선 이에 공역을 시작하여
실로 그대의 제도를 준수하노라.
05.우리 한(漢)나라에 제사 지내는 일이 완비되었으니,
의식 때마다 명당에 그림으로 남긴다네.
06.오례(五禮)를 거행함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는데,
명당의 아홉 칸을 본받고자 하나 징험할 데가 없었지.
07.포악한 진(秦)나라 때까지 오랜 세월을 거쳤으니,
다만 옛 터전만 동대(東岱; 泰山)에 남아 있었지.
08.공옥대가 잠시 뒤 명당도를 바쳤으니,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가 남겨주신 제도였다네.
09.귀유구(鬼臾區)는 보정(寶鼎)을 얻는 일에 대해 예언하였고,
기백(岐伯)은 동태산(東泰山)에서 천신에게 제사지냈지.⑤
10.띠 풀로 지붕을 덮고 물로 에워쌌으니,
그 당당한 그림이 한 폭에 담겨 있구나.
11.그러자 황제께서 명당을 짓고자 하여
봉고현(奉高縣)에 명하여 건물 터를 살펴보게 하셨네.
12.땅은 낭야군(琅邪郡)과 경계가 닿아 있는데,
누각(樓閣)은 복도(複道)를 곤륜산(崑崙山) 모양으로 만들었다네.⑥
13.문수(汶水)의 물결은 그 일대에 널리 퍼져 있으니,
하물며 공자(孔子)께서도 사셨던 곳임에랴.⑦
14.이 명당의 제도를 분명히 밝혀 이곳에 이를 지었으니,
황제께서 이르기를 ‘아, 그대 신하들이여!’ 하고 감탄하셨네.
15.주공(周公)⑧도 명당에서 제사를 지냈으니,
맹자(孟子)께서 그 때문에 허물지 말라고 하셨지.⑨
16.옛날의 제도를 따르면서 새롭게 혁신하였으니,
아름다운 모습을 대하여 아름다움을 알겠구나.⑩
17.공훈이라면 나무를 베어서 재목을 만들었고,
인물이라면 옥돌을 갈아서 법식을 따르게 했지.
18.동일하게 적용할 법도를 찾았으니,
실로 시원하게 열린 여덟 개의 창문에서 분명하다네.
19.소택 안에 하(夏)나라의 혼전(魂殿)을 모방하여 만들었고,
영소(靈沼) 가에 주(周)나라의 영대(靈臺)⑪를 모방하여 만들었지.
20.동남쪽은 틔어서 구연(九莚)⑫을 배설(排設)했으니,
법식을 따라서 치우지지 않았네.
21.미앙궁(未央宮)⑬을 도성에 짓고
태극전(太極殿)⑭을 그 아래에 두었지.
22.탕탕 소리 내며 지었으되 도면을 숭상하였으니,
고대의 제도인데 지금 다시 구현했네.
23.옛 문헌에 기재한 것 아래위로 구분되었으니,
그 남겨진 아름다움을 도면에서 찾아보네.
24.아름다운 문채는 일찍 드러나 분명히 볼 수 있는데,
오묘한 이치는 묵묵히 쌓여 밀봉된 창문 안에 들어 있네.
25.문적의 간행은 지난날의 자취에서 찾아볼 수 있거니와,
의리의 탐색은 후진들 사이에서 빛날 것이다.
26.소용돌이치는 물결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줄곧 그 만족스러운 의식을 아름답게 여기노라.
27.전철을 따라서 평가를 하자면
멀리 때를 지나서 도면의 본보기가 되었다는 것이지.
28.쌓여 있는 향기를 뿌려서 후대에 알려주나니,
옛 사적을 징험함에 좋은 성과를 다 선택하리라.
29.가득한 향기를 발산하여 사방으로 펼치되
성대하게 거듭 반복하며 배회하노라.
30.나의 붓을 적셔서 무딘 글을 지었으니,
명당도의 법식을 우러러보며 숭상하는 바이네.
① 봉고현(奉高縣)에 …… 짓도록 하였다 : 이는 이 부(賦)의 제목으로, 『사기』 「효무본기(孝武本紀)」 등에 보이는 고사를 따 온 것이다. 「효무본기」에 의하면, 당초 한무제(漢武帝)가 태산(泰山)에 올라 봉선(封禪)의 의식을 거행했을 때 옛 명당 터를 발견했는데 그 곳의 지세가 험하고 비좁다고 여긴 나머지 봉고현 근방에 새 명당을 짓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제도를 몰라서 망설였는데 마침 공옥대가 고대 황제(黃帝) 시대의 명당도(明堂圖)를 바쳤으므로 봉고현에 명하여 문수(汶水) 가에 그 명당도의 도면대로 명당을 짓게 하였다. 때는 원봉(元封) 2년(B.C. 109) 가을이었다.〔『史記』 권12, 「孝武本紀」, “初天子封泰山, …… 於是上令奉高, 作明堂汶上如帶圖.”; 『藝文類聚』 권38, 「禮部·明堂」, “上欲治明堂, 未曉其制度, 濟南人公玉帶上黃帝時明堂圖. ……”〕 ‘명당’은 고대 제왕들이 정교(政敎)를 선포하고 전례(典禮)를 거행하던 곳을 이른다. ‘봉고현’은 태산군(泰山郡)에 속한, 태산군의 치소(治所)가 있는 현이다. ‘공옥대’는 제남(濟南) 사람으로, 성이 공옥(公玉)이고 이름이 대(帶)이다.
② 주허(朱虛) : 낭야군(琅邪郡)에 속한 현(縣) 이름으로, 동태산(東泰山)이 있으며 문수(汶水)가 발원하는 지역이다.
③ 명당도(明堂圖) 도면 : 「효무본기」에 의하면, 명당도의 도면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명당도 속에는 전당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사방에는 담이 없고, 띠 풀로 지붕을 이었으며, 물길을 통하게 하여 궁실의 담장을 둘러쌌다. 상하 이층의 통로인 복도(複道)를 만들었는데, 그 상층에는 누각(樓閣)을 만들고 서남쪽에서 들어가도록 하였으되 그 통로를 곤륜도(崑崙道)라 일렀다. 천자는 이 길을 따라 들어가서 상제에게 제사지내도록 되어 있었다.”〔『史記』 「孝武本紀」, “明堂圖中有一殿, 四面無壁, 以茅蓋, 通水圜宮垣, 爲複道, 上有樓, 從西南入, 命曰昆侖. 天子從之入, 以拜祠上帝焉. (於是上令奉高, 作明堂汶上如帶圖.)”〕
④ 귀유구(鬼臾區)는 …… 예언하였고 : ‘귀유구’는 고대 황제(黃帝)의 신하로, 점술·의술·병법 등에 밝았다는 전설상의 인물이다. 그가 본문에서 서술한 바 ‘보정(寶鼎)을 얻는 일에 대해 예언하였다’는 취지의 기록은 문헌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다만 『사기』 등에 의하면, ‘옛날 황제(黃帝)가 완구(宛胊) 땅에서 보정(寶鼎)과 신협(神莢; 神策)을 얻고 그의 신하 귀유구에게 자문을 구한 나머지 20년마다 초하루 아침이 동지 절기와 일치하는 역법을 만들었다.’는 기사가 보인다.〔『史記』 「孝武本紀」, “問於鬼臾區, 區對曰, 黃帝得寶鼎神筴, …… 後率二十歲得朔旦冬至, 凡二十推.”〕
⑤ 기백(岐伯)은 …… 제사지냈지 : 옛날 황제(黃帝)의 신하로, 의술에 뛰어난 명의(名醫)이다. 황제가 태산에 봉선의 의식을 행했지만, 풍후(風后)·봉거(封鉅)·기백 등이 다시 건의하여 동태산에서 천신에게 제사지내고 범산(凡山)에서 지신에게 제사지내게 하였다 한다.〔『史記』 「孝武本紀」”〕
⑥ 누각(樓閣)은 …… 만들었다네 : 명당도 설명 중의 “상층에는 누각(樓閣)을 만들고 서남쪽에서 들어가도록 하였으되 그 통로를 곤륜도(崑崙道)라 일렀다.[爲複道, 上有樓, 從西南入, 命曰昆侖.]”라는 구절의 주석에서 “그것이 곤륜산(崑崙山)의 5성(城) 12루(樓)와 닮았기 때문에 ‘곤륜도’라고 불렀다.” 하였다.〔『史記』 「孝武本紀」, “爲複道, 上有樓, 從西南入, 命曰昆侖. <索隱> 玉帶明堂圖中, 爲複道有樓, 從西南入, 名其道曰崑崙, 言其似崑崙山之五城十二樓, 故名之也.”〕
⑦ 문수(汶水)의 …… 곳임에랴 : 이 말은 공자의 제자 민자건(閔子騫)이 노(魯)나라의 대부(大夫)이자 집권자인 계씨(季氏)로부터 비(費) 땅의 수령직 제의를 받고 결연히 거부의 뜻을 밝히면서 “만약 다시 나를 부른다면, 나는 반드시 노나라를 떠나 제(齊)나라의 문수(汶水) 가에 가 있게 될 것이다.[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라고 한 『논어』의 구절을 인용한 대목인 듯하다.〔『論語』 「雍也」〕 공자가 문수(汶水) 근처에 거주하였다는 기록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⑧ 주공(周公) : 주(周) 나라 초기의 정치가로, 성이 희(姬)이고 이름이 단(旦)이다. 문왕(文王)의 아들이자 무왕(武王)의 아우이며 성왕(成王)의 숙부이다. 조카인 어린 성왕(成王)을 대신하여 섭정(攝政), 나라를 잘 다스렸다. 유가(儒家)에서 받드는 옛 성인(聖人)의 한 사람이다.
⑨ 맹자(孟子)께서 …… 하셨지 : 『맹자』에 보이는 말을 인용하였다. 맹자가 제 선왕(齊宣王)에게 에게 이르기를 “명당은 천자의 당이니, 왕께서 인정을 하고 싶으면 헐지 마소서.”라 하였다.〔『孟子』 「梁惠王下」, “夫明堂者, 王者之堂也, 王欲行王政, 則勿毁之矣.”〕
⑩ 아름다운 모습을 …… 알겠구나 : 원문 ‘면춘풍이성식(面春風而省識)’을 옮긴 말이다. 이는 두보(杜甫)의 시 「영회고적 5수(詠懷古迹五首) 제3수」 중 “잘못된 그림만으로 아름다운 용모를 식별했으니, 달밤에 패옥을 찬 채 헛되어 돌아오는 왕소군(王昭君)의 넋이여.[畫圖省識春風面, 環珮空歸月夜魂.]”의 앞 구절을 원용한 표현이다. 두보의 이 시구는 ‘미모가 빼어난 한(漢)나라 원제(元帝)의 후궁 왕소군이 자신의 미모를 믿고 화공(畵工)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던 탓에 화공이 그녀의 미모를 추하게 그렸으므로, 원제(元帝)가 그녀를 가까이 대하지 않다가 흉노와 화친을 맺으면서 그녀를 흉노에 출가시킨 나머지 만리타국에서 그녀를 고혼(孤魂)이 되게 하였다.’라는 고사를 읊은 것이다. ‘춘풍(春風)’은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뜻으로 ‘춘풍면(春風面)’이라고도 이르는데, 본문에서는 ‘명당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유한 말로 이해된다.
⑪ 영대(靈臺) : 주나라 문왕(文王)이 건립한 누대 이름으로, 영소(靈沼)와 함께 『시경』에 보인다.〔『詩經』 「大雅·靈臺」〕
⑫ 구연(九莚) : ‘연(莚)’은 ‘9척 길이의 대자리’를 이른다. 따라서 ‘구연’은 ‘9척 짜리 아홉 개의 대자리’로, 총 81척의 길이의 대자리이다. 주나라의 명당에 동서로 9연의 대자리를, 남북으로 7연의 대자리를 각 배설하였다 한다.〔『周禮』 「考工記·匠人」, “周人明堂, 度九尺之筵, 東西九筵·南北七筵.”〕
⑬ 미앙궁(未央宮) : 한 고조(漢高祖) 때 장안(長安)에 도읍하고 지은 궁궐로, 승상 소하(蕭何)에 의해 한고조(漢高祖) 8년(B.C. 199)에 영건되었다.〔『史記』 「高祖本紀」〕
⑭ 태극전(太極殿) : 『사기』에는 보이지 않는 궁전 이름이다. 당나라 때 장안의 궁전 이름으로, 태극궁(太極宮)의 정전(正殿)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