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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국역
入夜雲屛多澗響
先春梅閣返花魂
棋聲已發東山局
酒氣方深北海尊
問君那得淸如許
羞向風塵說夢痕
【歲在甲子仲夏 粧帖 筆簡 金玉均書】
밤에 구름 에둘러서 시내 소리 크게 울리고
봄에 앞서 매각1)에는 매화혼이 되돌아왔네
동산에서 대국 벌이니2) 벌써 바둑 소리 나고
북해 술동이3) 가득하니 술기운 더욱 깊어지네
그대에게 묻노라니, 어찌하여 이리 맑은가
풍진 속에 꿈의 자취 말하기가 부끄럽구나
【갑자년 음력 5월에 장첩하다. 필간(筆簡) 김옥균4)이 쓰다】
1) 매각(梅閣) : 동각관매(東閣官梅)로 지방 고을 관아에 핀 매화를 뜻한다. ‘각매(閣梅)’, ‘합매(閤梅)’라고도 한다. 남조(南朝) 양(梁)나라 하손(何遜)이 건안왕(建安王)의 수조관(水曹官)으로 양주(楊州)에 있을 적에 관청 뜰에 매화 한 그루가 있으므로 매일 그 나무 아래에서 시를 읊곤 하였는데, 뒤에 낙양(洛陽)에 돌아갔다가 그 매화가 그리워서 다시 양주로 발령해 줄 것을 청하여 양주에 당도하니, 매화가 한창 피었기에 매화나무 아래서 종일토록 서성거렸다는 고사가 『양서(梁書)』 「하손열전(何遜列傳)」에 보인다. 두보(杜甫)는 이 고사를 인용하여 “동각의 관매가 시흥을 돋우니 또한 하손이 양주에 있을 때와 같구나.[東閣官梅動詩興 還如何遜在楊州.]”(『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권9 〈화배적등촉주동정 송객봉조매 상억견기(和裵迪登蜀州東亭 送客逢早梅 相憶見寄)〉)라는 시를 지어 이 말이 유명해졌다.
2) 동산에서 대국 벌이니 : 진(晉)나라 사안(謝安)은 동산(東山)에 20여 년 동안 한가히 은거하고 있을 때에, 전진(前秦)의 왕 부견(苻堅)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회비(淮肥)까지 진군하였다.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에 임명된 사안이 조카인 사현(謝玄)을 보내 부견을 격파하게 하였다.당시 진인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사안은 손님을 상대로 담소하며 태연히 바둑을 두어 흉흉한 인심을 진정시키면서 승첩의 보고를 기다렸다는 고사가 『진서(晉書)』 권79 「사안ꥶᅧ전(謝安列傳)」에 보인다.
3) 북해(北海) 술동이 : 북해는 후한(後漢) 때 북해 상(北海相)을 지낸 공융(孔融)을 가리킨다. 공융은 본디 선비를 좋아하고 후진들을 교도하기를 좋아하여 빈객이 항상 그의 문에 가득하였는데, 일찍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자리에는 빈객이 항상 가득하고, 동이에는 술이 항상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나는 근심이 없겠다.[坐上客恒滿 尊中酒不空 吾無憂矣]”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후한서(後漢書)』 「공융열전(孔融列傳)」에 전한다. 여기서는 술동이에 술이 가득하여 빈객과 즐거이 주흥을 즐기고 있음을 북해의 고사를 가져와서 형상화한 것이다.
4) 김옥균(金玉均, 1851~1894) : 구한말의 급진 개화파이며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적극적인 개혁운동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충청도 공주 출생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생부는 김병태(金炳台)로 김병기(金炳基)의 양자로 입적하여 서울 북촌 화동에 거주하였으며, 김병기의 임지를 따라 강릉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송담서원(松潭書院)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김옥균의 글씨는 일본 스나가 하지메(須永元)가 수집한 수집품을 통해 알려졌다. 그의 글씨는 근대 서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 김승익,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본인의 한국 서화 수집 - 사노시향토박물관(佐野市鄕土博物館) 스나가문고(須永文庫)를 중심으로」, 『한국근현대미술사학』 38, 2019, pp.59-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