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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필첩은 제목을 「필간(筆簡)」이라 붙였는데, 말 그대로 편지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안에 실린 두 편의 편지는 모두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이 직접 쓴 것으로, 글 말미의 서명에서도 “玉均 拜”, “玉生 拜啓”라 밝히고 있어 그의 친필임을 확인할 수 있다. 표지에 “갑자년 한여름에 장첩으로 꾸몄다[歲在甲子 仲夏 粧帖]”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김옥균이 편지를 쓴 해가 아니라, 후대에 누군가가 이 편지를 모아 한 권의 필첩으로 만든 시점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김옥균의 편지가 쓰인 것은 그보다 앞선 시기이고, 갑자년 여름은 그것을 정리해 책으로 엮은 연대를 가리킨다. 따라서 표지 전체를 풀면, “『필간』 — 김옥균이 쓴 편지, 갑자년 여름에 장첩으로 꾸몄다.”라는 뜻이 된다. 이 필첩은 김옥균의 청년기 생활과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귀한 자료로, 정치가로 알려진 그의 또 다른 모습, 즉 병중의 사정을 전하거나 친지에게 도움을 구하는 소박한 서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이 편지는 김옥균(金玉均, 1851~1894)이 젊은 시절, 자신을 “옥생(玉生)”이라 칭하며 연장자에게 올린 간찰이다. 내용은 먼저, 늦게나마 답신을 받고 위로와 교분의 깊음을 감사드린다고 전하였다. 목재(木材)로 추정되는 사안과 관련하여, “이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 만하다”고 토로하였다. 또한 이 문제는 단순히 한두 가지 방도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수신자가 보유한 세 가지나 네 가지 방법(三四端)을 모두 내어 도와줄 것을 간청하였다. 한 사람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차치하더라도, 세 가지 방법만이라도 함께 제공하면 합쳐 사용할 수 있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이어 혹시라도 이 일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면목이 없을 것이라 말하며, “거듭거듭 부탁드리니 송구할 따름이다”라고 표현하면서,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반복적으로 드러냈다. 끝으로 “옥생(玉生) 계배(拜啓)”라 자서하여 존경과 겸양을 표하였다. 이 간찰은 김옥균이 실제 생활적 필요나 재정적 곤란 속에서 친지나 후견인에게 협조를 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중한 문투 속에서도 절박함이 드러나며, 청년기의 김옥균이 정치가로 부상하기 전, 가문과 인맥 속에서 어떻게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도움을 청했는가를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편지는 그가 훗날 개화사상가로 알려지기 이전, 청년기 사적 생활상과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제목 없음
晩拜
惠復 慰荷交深
?木 旣是一人之力
所難負持 則其
大可知哉 亦隨大
然所用處 則又非一
端 大者所能了 何
不以所有三四端 盡
惠貸耶 一人之持
勝與否姑舍 所有三
端 一幷惠之 則可以
合用可免 又向人乞
此事 諒存焉 奉
呵無已 豢求之無厭
幾或如是朽
更呵更呵 留拜不備
上 卽 玉生拜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