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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만만재(萬萬齋)가 종질(從姪) 권익호(權翼鎬, 字 可成)의 자(字)에 관해 남긴 훈계문이다. 시기는 을축년(1865) 12월 하순이며, 장소는 오석 영원(烏石靈源)으로 기록되어 있다. 권익호는 본래 장자 권한인이 아닌 권한옥의 현손이었으나, 후율(後栗) 권교정(權敎正, 1807~1865)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권교정이 만년에 아들을 삼아 지극히 아끼며 ‘익호(翼鎬)’라 이름 짓고, ‘날개[翼]’로 도와 성취를 이룬다는 뜻에서 자(字)를 ‘가성(可成)’이라 부여하였다. 그러나 권교정은 이 아들의 성취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이에 당제(堂弟)인 만만재가 종질(從姪)인 권익호를 위해 이 글을 지은 것이다. 글의 주요 내용은, 먼저 형 권교정이 장수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 아들의 장래를 보지 못한 것을 슬퍼하였고, 이어 권익호가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의지할 형제 없이 성장하는 처지를 애통히 여겼다. 그 때문에 더욱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음을 천명하였다. 권교정이 지어준 이름과 자에 담긴 뜻을 상기시키며, 이는 곧 스스로를 닦고 남을 도우며, 가정과 가문을 일으켜 세우라는 뜻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길은 극기(克己), 경(敬), 서(恕)의 덕목을 체득하는 데 있으며, 단순히 의관이나 예절의 형식에 머물지 않고 내면의 덕을 기르는 데 있다고 역설하였다. 나아가 집안의 성취가 곧 족당(族黨) 전체의 귀의로 이어질 것임을 밝히고, 제사와 상례를 정성껏 준행하며 부모에 대한 효성을 다해 조상과 가문에 날개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이 글은 권교정 사망 직후, 양자로 입적된 권익호의 장래를 걱정한 종제 만만재가 남긴 일종의 자설(字說) 겸 가훈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이름자의 풀이를 넘어, 유학적 수양의 핵심 덕목과 효제의 도리를 강조하면서 가문의 계승과 향촌 사회에서의 도덕적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이 글은 19세기 중엽 안동 권씨 청풍당계 가문의 양자 제도, 가문 계승 의식, 유학적 교훈의 전승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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從姪翼鎬字說
后栗堂兄 晩育螟兒 冠之日 名以翼鎬 取羽翼以成 字之曰 可
成 示冠子文 而徵序於余者 三載于玆矣 一日蘭報忽至 余驚倒而
哭之 旣而歎曰 吾兄年未及耆 又未見其子之成就 胡爲至於斯歟 須讀
其冠子至 早孤零丁 終鮮兄弟 形單影隻 在家在塗 未有羽翼
相資之益 斯乃慟於己 而望於汝者 未嘗不三復流涕也 翼乎 此爾所以
沒身佩服者矣 爾苟顧其義 而思踐其實 則吾兄命名者可庶幾
矣 而所謂踐實之道 捨克復敬恕而奚求哉 古君子成己成物 必由乎
克己敬身 而著於言動 故紘綖冕弁 首容之成也 珮玉玦環 行儀之成
也 衣裳黼黻 揖讓升降 立乎朝廷 而正君臣出入宗廟 而臨大事 儼然人
望其儀容曰 此責成人於家而成教於國者也 然行不充乎內 德不備於
人 雖盛其服文 罔與成厥功矣 噫 爾旣承家主鬯 我曾王考 將
以開業傳世 而旣能從事乎克復敬恕 則在家無怨 亦有歸仁者矣
不但爲一家之成凡 族黨之宗爾者 亦將四面歸向樂爲之成也 吾祖
先之靈 固當曰 予有後矣 況爾在苴憂 必志乎三年無改 而小心翼
翼 晨昏饋奠 哀哭泣戚顔色 盡其以禮 退於北堂 和柔寬譬
資於事 而以愛同 則可以羽翼於先人 可以羽翼於慈氏 子成
一家之道 其在斯欺 爾其勉之 乙丑蠟月下瀚 從叔萬萬齋 書于
烏石靈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