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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건은 명암공(鳴巖公) 권련(權璉, 생몰연대 미상)의 생애와 학행을 기린 행적(行蹟)이다. 공의 휘는 련(璉)이며, 부친은 참봉(參奉) 권송(權悚), 조부는 대사성(大司成) 권륜(權綸, 호 소요정(逍遙亭), 증조부는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 권숭례(權崇禮)로, 양촌 문충공(陽村文忠公)의 종현손(從玄孫)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능이 뛰어났으며, 장성하여 경서와 사서를 익히고 문장에 능하여 명성이 온 세상에 퍼졌다. 정덕(正德) 기묘년(1519)에 사마 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였고, 김모재(金慕齋), 정전한(鄭典翰) 등 명사들이 그의 효렴(孝廉)과 강학(講學)의 행실을 천거하였다. 조정에서 세자 사부(師傅)로 전후 세 차례 제수하였으나 모두 응하지 않아 세상에서 ‘징군(徵君)’이라 불렀으며, 이는 읍지(邑誌)와 『여지승람(輿地勝覺)』에 기록되어 있다. 당대의 동년 친구 박필재(朴篳齋)는 “연하에 오래 은거한 징군이여[烟霞久閉徵君臥], 원학이 자네를 꾸짖듯 자주 찾아오네[猿鶴應譏刺史來]”라는 시로 그의 은거 생활을 노래하였다. 공은 경호(鏡湖)에서 시문과 역사로 스스로를 즐겁게 하였으며, 항상 속세를 떠날 뜻을 품었다. 그가 사귀었던 벗들은 모두 기묘년의 명현인 조정암(趙靜菴), 김충암(金冲菴), 신기재(申企齋), 김사서(金沙西)와 같이 도의(道義)로 맺어진 교유였다. 후에 사화(士禍)가 일어나자 스스로 몸을 숨기고 대전(大田) 명암(鳴巖)에 터를 잡아 살면서, 이를 자호(自號)로 삼았다. 그는 ‘독서(讀書)’라는 편액을 단 작은 당을 짓고, 날마다 제자들과 함께 경의(經義)를 강론하였다. 또한 상례(喪祭)와 예의(禮疑)에 관한 저술을 남겨 가전(家傳)하였다. 율곡 이문성공(李文成公, 이이)은 공의 손자의 이종사촌이었는데, 공의 묘표에 “효우(孝友)와 학행이 실로 근원이 있으며, 높은 기풍과 준엄한 절개가 추앙받을 만하다. 백세 뒤라도 그 풍모를 들은 자는 감히 존경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명암공 권련의 가계, 학문, 절의, 은거 생활, 제자 교육, 그리고 가전 문헌을 종합적으로 전하며, 조선 중기의 사대부가 학문과 절의를 지키며 향촌에서 후학을 양성한 삶의 전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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鳴巖公行蹟
權公諱璉 考參奉諱悚 祖大司成諱綸 號逍遙亭 曾祖判典教寺事諱崇禮 卽陽村文忠公從玄孫也 公生而穎異 及長習經史善文章 名聲傾一世 正德己卯 中司馬兩試 金慕齋·鄭典翰 俱以孝廉康學行 薦于朝 得前後 除旨洗馬叅奉 世子師傅 凡三徵不起 故世稱徵君 事在邑誌 輿地勝覺 其時同年友朴篳齋 贈詩曰 烟霞久閉徵君臥 猿鶴應譏刺史來 公以詩史自娛於鏡湖之上 倏然有出塵之想 而且所與交遊皆己卯名賢趙靜菴·金冲菴·申企齋·金沙西 是道義之交也 及禍作 遂自晦匿 卜居於大田鳴巖 因爲自號焉築一小堂 扁曰讀書 日與諸生 講論經義 又著喪祭及禮疑 等說傳于家 栗谷李文成公 卽公之孫之姨從 而表公之墓曰 孝友學行 實有所自 而高風峻節 寔爲所仰 百世之下 聞公風者 孰不起敬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