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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541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7년 권진응 간찰 / 權震應 簡札
- ㆍ발급자
-
권진응(權震應)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8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7년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亥閏月七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7.4 × 5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피봉과 간찰이 맞지 않는다. 1767년 권진응이 연원찰방으로 있던 권계학에게 보낸 간찰로 판단된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피봉에 수신자의 재향(在鄕, 在家) 상황을 나타내는 “烏竹軒 權佐郞宅/ 黃江候狀 省式謹封”을 기록하고 있으나 발급연도는 ‘정해년 윤7월 7일’이므로 당시 연원찰방에 재직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본문 가운데서도 수신자의 안부를 물으며 “政候”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현직에 재직 중임을 나타내었으므로 재향 상황을 나타내는 택호로서 지칭되는 피봉기록과는 맞지 않다. 특히 피봉 하단 봉합처에 기록된 “省式謹封”을 통해 발급자는 당시 복상(服喪) 중임을 나타내었지만 본문에는 그러한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간찰은 첩으로 제작할 당시에 이미 착간 된 피봉을 배접했을 가능성이 크다.
권진응(權震應)이 정해년(1767) 윤7월 7일에 권계학에게 보내온 간찰이다. 최근 서로의 소식이 뜸해진 점을 아쉬워하며, 무더운 여름철에 수신자의 건강이 무사한지 깊은 염려를 하였다. 자신 또한 병세가 근래 조금 나아졌으나, 자녀에 대한 걱정은 여전하고, 출입이 있는 기녀가 대종(大腫)에 걸려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해 심한 근심과 괴로움을 토로하였다. 이어, ‘선집(先集) 판본’의 교정 작업이 보름 뒤 선암(仙巖)에서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이를 맡기로 한 도원(道源)이 체직되어 가버린 바람에 인부와 자재 없이 착수하게 된 곤란한 사정을 설명하였다. 이에 중도 폐기를 막기 위해 힘닿는 대로 도와줄 것을 간절히 부탁하였다. 또한 선집(先集) 한 건은 낙장을 보완한 뒤 이미 보내드렸으며, 그 외에 두 건의 책판(冊板) 중에서 남당(南塘) 한원진이 편찬한 『경의기문록(經義記問錄)』이 있고, 선조(先祖) 함장(函丈)이 지은 『주서동이고(朱書同異攷)』가 있는데, 이는 우암(尤庵)이 미완(未完)에 그친 사업을 완수한 것으로, 두 책은 합계 6책 분량이며 종이 11속이면 인쇄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인쇄비는 몇 냥이면 충당할 수 있어 구입해 송부할 계획임을 전하고, 서울 쪽 소식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요청하였다. 말미에는 사위의 집에 있는 서책 각본을 보내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이 간찰은 발신자가 문헌 교정·간행 사업의 구체적 준비 상황과 재정·인력 부족의 현실적 곤란을 전하면서, 수신자에게 실질적 지원을 호소한 내용이다. 동시에 당대 학문 계승과 미완 저술의 완성을 통한 출판 사업을 언급하고 있어, 조선 후기 지역 유학자의 출판 활동과 인적·학문적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원문
皮封 : 烏竹軒 權佐郞宅 入納
黃江 候狀 省式 謹封
近頗阻候 但切憂?之思 不審
老炎
政候若何 瞻仰非虛語也 震應
身病 近始少間 而兒憂一樣 又聞
出妓女 患大腫 濱危之報 憂惱尤
難堪 奈何 先集板本 改正之
役 始於望後 將以十五 入仙巖 而此
事專恃道源相助之諾 而募致匠
手於嶺外矣 道源不意遞去 空手
始役 罔知所以爲處也 幸
隨力相助 俾免中撤之患如何 先集
一件 補入落張後 因擬奉呈 而此外
爲二件冊板 南塘韓丈所編者 一曰/
經義記問錄 庸學 太極圖 啓蒙 等奧義記
聞外 先祖函丈者 其一曰 朱書同異攷 大全語類/
初晩同異類聚折衷者
此實承尤庵未了之業
而成就者
右二書 合爲
六冊 用紙/
十一束 則可印書 而欲以價錢入送 則
當入數兩銅耳 京信或有近報
則示之爲望 李休??樓江否 姑不宣
狀式 丁亥閏月七日 宗末 震應 頓
李壻家 書角討本惠如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