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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6_01_A00517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55년 권철식 간찰 / 權徹植 簡札
- ㆍ발급자
-
권철식(權徹植)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오석(權五錫)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955년 6월 11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子季夏旬一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19.6 × 108.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955년 6월 11일에 권철식(權徹植)이 권오석(權五錫)에게 보낸 간찰로서 위답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1955년 6월 11일에 권철식(權徹植)이 권오석(權五錫)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에는 “강릉군 정동면 죽헌리 권오석”이라 하고 긴급히 전달할 것을 명기하였고, 발신 정보에는 “원주 소초면(所草面) 조암리(棗巖里) 회촌(檜邨) 권철식(權徹植)”이라 적혀 있다. 본 간찰은 모친의 상(喪)을 치른 후, 친족이자 동문 관계로 보이는 권오석에게 자신의 슬픔과 가문의 상황을 전한 사사로운 보고이자 위문의 회답이다. 이 편지는 상사(喪事)를 둘러싼 의례적 절차, 장지(葬地) 결정, 제문(祭文) 청탁, 자손 교육 등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담고 있어, 장례 의식과 문중 윤리, 인간적 정서를 함께 보여주는 자료다. 발신자는 먼저 모친의 갑작스러운 별세를 전하며, 하늘이 자신에게 벌을 내리고 그 화가 어머니께 미쳤다고 통곡한다. 하늘을 부르짖고 발을 구르며 애통해하였으나 이미 어찌할 수 없었음을 한탄하고, 장례를 치른 지 한 달이 지났으나 시신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현실에 자책을 표한다. 이어서, 세속적 형편 때문에 부득이하게 집 뒤의 미정한 터에 시신을 임시로 안치할 수밖에 없었으며, 부모의 유해가 온당한 곳에 묻히지 못한 점을 가장 큰 한으로 여긴다고 토로한다. 그는 이러한 고통이 날로 깊어져 죽어도 다할 길이 없다고 덧붙인다. 중반부에는, 각처에 부고를 전하려 했으나 인편이 부족해 절반은 중도에 멈췄다고 설명하면서, 권오석에게만은 비록 전령을 보내지 못했더라도 우편으로라도 소식을 전하는 것이 도리라 여겨 편지를 부쳤다고 밝힌다. 또한 과거 권오석이 조문을 보내주었을 때, 자신은 상복 중이라 답장을 올리지 못하고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소식이 끊겼음을 미안해하며, 같은 고향 사람으로서의 우정과 혈연의 정을 되새긴다. 이어 그는, 장례 절차가 모두 끝났음에도 허전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며, 선조와 선비의 초상화를 철거하고, 삼년상이 끝난 뒤에도 애통이 가시지 않는 자신의 심정을 담담히 서술한다. 권오석의 근황을 묻는 대목에서는 근래 폭염이 심하다 들었는데, 그럼에도 평안히 지내는지, 가문의 후손들이 모두 무탈한지 묻는다. 또한 그는 자식 교육과 농사 일에 힘쓰며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권하고, 자신은 집안이 빈약하고 학문에 뜻을 잇지 못해 늘 부끄럽다고 자책한다. 편지의 후반부에서는, 종제(從弟) 명식(命植)과 조카 병익(炳益)의 근황을 언급하며, 병익이 이제 열한 살이니 장차 가계를 잇는 책임이 막중하다고 걱정한다. 순흥(順興)의 가세가 기울어 더는 언급하기 어렵다며 문중의 쇠락을 개탄하고, 자신이 능히 도울 수 없음을 슬퍼한다. 또한 조선 말기 지방의 유림 사회가 쇠퇴하여 문자를 주고받는 이조차 드물다며, 문명과 인의(仁義)가 사라져감을 개탄한다. 그러나 권오석만은 선조의 유풍을 따르고 글과 도리를 밝히는 사람이라 칭송하며, 그가 보내는 서간의 문구 하나하나가 사람을 일깨운다고 찬탄한다. 추신에는 만재공(萬齋公) 관련의 장지(狀誌)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남기며, 가까운 고을에도 청탁할 문인조차 없어 안타깝다고 밝힌다. 끝으로 권오석이 이 회신을 받으면 군더더기 문장을 덜어내고 정성으로 보태어 완결해 주기를 간청하면서, 다시금 학문과 덕행을 넓혀 세상을 교화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제목 없음
江陵郡 丁洞面 竹軒里 權五錫宅 入納 勿滯至急
原州 所草面 棗巖里 檜邨 權徹植 疏函 (緘)
稽顙言 顧此不肖 罪積惡極 皇天降割 不於不肖 顯戮酷及先妣 再往年至月旬九辰時 遽遽罔極之變 雖呌天頓足 何所逮及 至玆附身附棺 雖有時月之一滿 而素乏之地 其敢自盡無憾哉 葬地則緣於世故 非獲已權厝于家後不卜之原 父母體魄 托非其地 悠悠痛恨 雖死曷極 日月駛流 遽經常事 又期纔隔六朔 悲廓情私 實不自堪 各處訃書 未能專人 中止者殆半 而於座下則雖無專使 憑郵書寄 猶賢乎已 故其時 卽付郵矣 未知無滯到達也否 噫 曩年答唁 伊時卽覽 而仍伏苫塊 不敢裁謝 因阻三稔 杳玆千里 尋常友契 尙云難堪 况在同堂而愛戀者乎 且念三霜已過 先祖妣畵象永撤 禫吉隨制已畢 風樹痛廓 益復何如 哀念節節 繼問比炎孔酷 省退餘 棣體腆旺 各樹亦得鴻休 修治之工 果不爲外物所侵奪 而課子明農 樂在其中也否 遠念切摯 實非常例 罪三從 哀遑惻怛之心也 無可齒於人 而受旣甚薄 養亦專闕 不能就益於一國之善士 孤陋自便 過尤山積 每念長吁 無計補塡 縱欲自明 有非泓穎可旣 奈何 惟以庇下無警 東西各家 亦無別樣 爲一倖而已 吾宗家后事 言念哽塞 而從弟命植 權奉主鬯 其子炳益 年今十一矣 日後成就立嗣之責 實非淺念也 順興宅家樣 亦不忍說道 門祚否替 胡至此極 只自痛咄已耳 貴郡山水 誠寤寐願一遊者 而氄鎖掣肘 依如家鴨之不能奮飛 得接淸範 亦以難矣 向風馳霜 只自憫然 現今儒風蔑如 文字往復亦難其人 良一吟慨然也 惟座下克涉遺規 雖片言寸牘 辭念貫通 詳略畢擧 令人一覽 自有起警者 存其所感幸 筆何敢陳 萬望懋學明理 自治有餘 施及遠人 餘在尾續 荒迷不次
甲子季夏旬一 三從孤哀人 徹植 疏式
嗚呼 萬齋公狀誌之未及文 遺稿之未成編 惟我伯府君曁府君臨終時遺恨者 而顧以不肖之空空 將何以補其萬一耶 環顧近鄕 亦無求文處 慨歎何及 玆賜回書 則刊去浮文 相與實際 以射衷曲 至希至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