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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찰은 갑오년 4월 1일에 한 부친이 아들 혁은(赫殷)에게 보낸 편지다. 발신자는 말미에 부서(父書)라고 명기하여 친권적 훈유의 형식을 분명히 하였고, 수신자는 이름으로 보아 아들에 해당한다. 서지적으로는 조선 후기 가문 내부의 윤리적 질서와 가계 계승 문제를 주제로 한 가서(家書)의 성격을 띠며, 집안의 종계(宗系), 양자(養子), 후손 교육과 같은 현실적 문제를 상세히 논한 점이 특징이다. 이 편지는 부친이 노년의 나이로 외딴 지역에 머무는 아들에게 가문 계승의 중대함을 거듭 강조하며, 부자 간의 정서와 도덕적 책임을 함께 일깨운 교훈적 간찰이다. 따라서 본 간찰은 조선 후기 사대부 가문의 윤리관·가통 의식·가학(家學) 계승 구조를 동시에 보여주는 대표적 예문 편지로 평가할 수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발신자는 먼저 봄이 다하고 여름이 오도록 오랜 기간 서로 만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늙어가는 자신의 마음이 매일 근심스럽다고 토로한다. 이어 아들의 근황을 묻고, 손자인 순만(純萬)의 학업 상태와 박 사돈의 가족 안부까지 세세히 확인한다. 지난해 흉년으로 생계가 어려웠음을 걱정하며, 고궁(固窮)은 선비의 본분이니, 다만 마음을 따라 편안히 여기라고 하여 도덕적 인내를 권한다. 이어 사촌 오상(五常)이 들어와 양자 문제를 상의하였음을 밝히며, 가문 계승의 중대성을 설파한다. 그는 대가 끊어져 양자를 세우는 것은 예부에 보고하여 입안을 받는 것이 국가의 제도이며, 이는 인륜을 세우는 큰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조상의 종계를 잇는 일은 다른 집안의 일과 비교할 수 없는 중대사라 하여 결단을 촉구한다. 또한 아비의 말을 듣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하여 부자 관계의 윤리적 위계를 확립한다. 후반부에서는 가문 내의 쇠락과 회복의 과정, 그리고 자손의 희박함을 언급하며 3~4세 사이에 자손이 드물고 약하나, 조상의 음덕으로 겨우 다시 일어섰다고 적어, 혈통 보존의 긴박함을 강조한다. 그는 또 네가 오랜 세월 협중(峽中)에 버려져 세상에 조롱을 받으니, 내가 밤낮으로 생각이 괴롭다고 하며 부정을 넘어 인간적 애정과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이어 자식을 가르쳐 가문을 세우는 것이 나의 소망이라고 밝히며, 양자 문제를 남에게 양보한 사실에 대해 부친의 책임으로서 마음이 편치 않다며 자책한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학문적 부족과 처신의 미숙함을 걱정하며 부끄럽지 않게 배우고, 종가의 문호를 따를 마음을 가져라고 훈계한다. 말미에는 순만은 여름철에 먼저 보내 학업을 이어가게 하고, 너는 농사 수확이 끝난 뒤 함께 오라고 일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가문과 교육의 실천을 끝까지 챙긴다. 편지는 이 뜻을 전하니, 너희도 나의 마음을 헤아리라는 부친의 절절한 정서로 맺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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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赫殷書
春盡夏來 相阻此久 老去情懷 何日不紆鬱也 更問諸況無恙 純萬 善於學課 朴査家大小 亦一安否 這這馳念不已 昨年彼中失稔 今春生計 何以捱度耶 固窮二字 自是士之常分 只爲隨安可也 吾衰狀依昔 渾亦幸安耳 日前斗山從弟五常入來 以渠之率養之事 有所商確 而其意專屬於汝 言甚懇曲 余答曰 凡繼絶立后 自是在在之國典 而昔者士夫家 必呈告于朝家 得禮部立案處分者 節文備盡 而重其事也 非重事也 重其人倫定 而民俗歸厚也 其義也 不亦大乎 當詳審措處 而且以從君家言之 旣爲繼祖之宗 所重非他家比 終難可恝也 遂與汝慈 相議諾定 以此諒知也 雖不聽於汝言 然爲子者 豈無聽父之道乎 旋念吾家 近在三四世間 子孫甚鮮弱 幸以祖先覆燾之澤 今日稍可振兟 人或比擬於謝氏之芝蘭 竟乃分庭 抑造物者 定其氣數而然歟 況以汝多年棄置於峽中 不無譏侮於人 晝宵我念 早晩率汝以來 敎汝子成汝家 期見團聚之樂矣 今又讓許於人 所謂爲父責者 當作何心乎 不覺缺然於中也 汝質愚蒙 兼昧素學 以何道理 能無忝於所生 而將順於從君家門戶之心乎 勉之也免之也 純萬 夏期爲先率來轉學 汝則有多少農作 不可不待秋成合率 至佳至佳 此處形便 亦如是云耳 汝之聘丈許 忙未各幅 轉佈此意也 其在終始愛恤之地 若聞此報 想當如我之爲懷也矣 餘掛萬不一
甲午四月初吉 父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