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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349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72년 윤시동 간찰 / 尹蓍東 簡札
- ㆍ발급자
-
윤시동(尹蓍東, 1729~1797)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8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72년 7월 1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辰 七月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1.5 × 49.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임진년(1772) 7월 14일[小望]에 윤시동(尹蓍東, 1729~1797)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임진년(1772) 7월 14일[小望]에 윤시동(尹蓍東, 1729~1797)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별도의 피봉은 없지만 동 문중 소장 동일 발급자의 여타 간찰을 참조하면 수신자는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으로 추정된다.
본문에서 언급된 ‘상대의 아들’은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이어가던 읍죽와(挹竹窩) 권한위(權漢緯, 1743~?)로 추정되지만, 『승정원일기』 등 사료에는 1770년(영조 46)에서 1777년(정조 1) 사이에 행적을 발견할 수 없어서 미상이다. 또한 발급자 스스로 언급한 ‘북쪽 변방에서 돌아오는 길[北塞歸路]’이란 1772년 3월경 김종수(金鍾秀)‧김치인(金致仁)‧정존겸(鄭存謙)‧이명식(李命植) 등과 붕당을 지어 당론을 일으킨 죄로 갑산부(甲山府)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돌아오게 된 사실을 가리킨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대가 부탁한 일은 이 간찰의 내용만 봐서는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고 정황상 어떠한 물건을 가져다주기를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발급자 윤시동은 자는 백상(伯常), 호는 방한(方閒), 본관은 해평(海平), 부친은 윤득민(尹得民)이다. 1754년(영조 30) 갑술 대증광시 병과 21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설서‧정언‧지평‧제주목사‧대사간‧대사헌‧대사성‧경기도관찰사‧개성유수‧형조판서‧전라도관찰사‧이조판서‧우의정 등을 역임했다. 그는 1756년 당론을 일으켰다는 사유로 방귀전리(放歸田里) 되었고, 1766년 신광집(申光緝)의 무죄를 논하다가 다시 방귀전리 되었으며, 1772년에 다시 갑산부에 유배되고, 1776년 경기감사 재직 당시 당론은 논했다는 사유로 남해현에 유배되는 등의 이력이 있다. 저서로는 『향례합편(鄕禮合編)』이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수신자로 추정되는 권계학은 자는 성집(聖集)‧성박(聖博), 호는 죽암,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공조정랑‧병조정랑‧연원찰방 등을 역임했다. 연원찰방을 끝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1774년(영조 50)에 오죽헌 근방에 청풍당(淸風堂)을 지은 뒤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1788년(정조 12) 1월 18일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봄 상간에 상대 아들이 도성에 들어와 이를 통해 상대의 안부를 듣게 되었음을 언급한 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 이때에 다시 소식이 이어지지 않아 서운하다고 하였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한가롭게 거처하는 안부는 더욱 좋은지 묻고는, 자신은 북쪽 변방에서 돌아오는 길에 말머리를 상대가 있는 동쪽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일에 매여 강릉에 3일 정도 있은 뒤 곧바로 돌아와 상대를 만나지 못해 한탄스러움이 그지없었다고 하였다. 지난번 상대가 부탁한 주선 건은 본관 수령 어른이 힘써 이루고자 하니 만일 수작할 일이 있으면 부디 ‘사다 둔 해가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유체(留滯)하고 있다’는 뜻으로 언급하여 운반 해 오기를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관의 인편을 통해 대략 이러한 내용을 보고하고 긴 말은 못하겠다고 했다.
- · 『英祖實錄』 『承政院日記』 임호민, 「조선조 명문가의 재도약 과정과 향촌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 -강릉거주 안동권씨 청풍당淸風堂 가문을 중심으로-」, 『강원사학』39(강원사학회), 2022
참고자료
원문
春間令胤入城 憑聞安信 而徂夏屆秋 更未嗣音 只有瞻悵爲勞 老暑愈酷 閒中啓居增相否 蓍 北塞歸路 馬首幾東 而爲事故所牽掣 自三日湖入 卽經還 遂失名軒一握敍 至今恨歎不已 頃敎爲此周旋者 本守丈欲爲之務致 如有酬酢 幸以貿置年久 尙此留滯之意及之 而圖所以運來 如何如何 因官便 略此書報 不得長語 姑不宣 伏惟下照 謹候狀上 壬辰 七月 小望 蓍東 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