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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348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82년 심염조 간찰 / 沈念祖 簡札
- ㆍ발급자
-
심염조(沈念祖, 1734~1783)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8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82년 4월 2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寅 四月 卄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6.2 × 45.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임인년(1782) 4월 26일에 기하(記下) 심염조(沈念祖, 1734~1783)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임인년(1782) 4월 26일에 기하(記下) 심염조(沈念祖, 1734~1783)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記下’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긴 하나 어느 정도 안면만 있던 사이로 추정된다. 별도의 피봉은 없지만 정황상 수신자는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으로 추정된다.
본문에서 언급된 ‘상대의 아들’은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이어가던 읍죽와(挹竹窩) 권한위(權漢緯, 1743~?)로 추정되지만, 『승정원일기』 등 사료에는 1777년(정조 1)부터 1785년(정조 9) 사이에 행적을 발견할 수 없어서 미상이다. 또한 본문에서 언급된 ‘지난번의 일[向來事]’는 이 간찰의 내용만 봐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 외에도 젓갈이나 술과 같은 음식물을 주고받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심염조는 자는 백수(伯修), 호는 함재(涵齋), 본관은 청송(靑松), 부친은 심공헌(沈公獻)이다. 1756년(영조 32) 병자 식년시 진사 2등으로 입격, 1776년(정조 즉위년) 병신 정시 을과 1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관서암행어사‧강화어사‧교리‧함종부사(咸從府使)‧직제학‧승지‧이조참의‧부제학‧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1778년에 채제공을 정사로 삼은 사은겸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1782년 부제학 재직 당시 대사간의 탄핵으로 홍주에 유배되기도 했다. 이 간찰이 발급된 해에 그는 규장각직제학에 재직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수신자로 추정되는 권계학은 자는 성집(聖集)‧성박(聖博), 호는 죽암,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공조정랑‧병조정랑‧연원찰방 등을 역임했다. 연원찰방을 끝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1774년(영조 50)에 오죽헌 근방에 청풍당(淸風堂)을 지은 뒤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1788년(정조 12) 1월 18일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상대인 권계학과 격조한 가운데 편지를 받고 겸하여 상대 아들도 만나 상대의 안부에 대한 상세한 소식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했다. 자신은 분주하게 일처리 하느라 기운을 내기 어려운데다가 질병이 점차 심해지는 등 근황을 전했다. 지난번 일은 생각한 바와 크게 어긋나니 한탄스럽다고 하였고, 상대가 보내준 물고기 젓갈과 술은 감사하다고 했다.
- · 『正祖實錄』 『承政院日記』 임호민, 「조선조 명문가의 재도약 과정과 향촌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 -강릉거주 안동권씨 청풍당淸風堂 가문을 중심으로-」, 『강원사학』39(강원사학회), 2022
참고자료
원문
阻仰中 承拜惠狀 兼奉令胤 細審起居之詳 慰荷可量 記下 奔走難强 疾病漸劇 奈何奈何 向來事大違所思 可勝咄咄 惠來魚鮓時作酒 有多認情餉 感荷之極 無以爲謝 餘不備狀禮 壬寅 四月 卄六日 記下 念祖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