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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340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6년 이상지 간찰 / 李商芝 簡札
- ㆍ발급자
-
이상지(李商芝, 172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7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戌 臘月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5.2 × 52.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66년 12월 16일, 복인(服人) 이상지(李商芝, 172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병술년(1766) 12월 16일에 복인(服人) 이상지(李商芝, 1729~?)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服人’로 표기하여 당시 복상(服喪)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磚洞 李承旨 謝狀’이라는 기록을 통해 발급자는 당시 승정원승지였고, 전동(磚洞, 현 서울시 종로구)에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우측에 ‘連源郵軒’이라는 기록을 통해 수신자는 안동 권씨 청풍당 문중 일원 가운데 ‘연원도 찰방(連原道察訪)’에 재직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발급연도 등으로 추정하면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으로 볼 수 있다. 그는 1765년 10월 27일에 겸춘추(兼春秋)에 제수되었다가 다시 12월 22일 친림 도정(親臨都政)에서 연원도 찰방에 제수된 뒤 이 관직을 끝으로 물러나 고향인 오죽헌으로 낙향하였다. 이 간찰이 발급된 해는 찰방에 재직 중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발급자 이상지는 자는 봉래(鳳來), 본관은 전주(全州), 부친은 이시중(李時中)이다. 1752년(영조 28) 임신 정시 병과 7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삼사의 청요직을 거쳐 승지‧병조참지‧호조참의‧대사간‧이조참의‧예조참의‧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이 간찰이 발급된 해인 1766년 4월 15일에 그는 승지로 있으면서 정이환(鄭履煥)이 송명흠(宋明欽) 등의 사면을 청하는 상소를 올려 대정현(大靜縣)에 찬배 될 때 이 상소를 받아드렸다는 죄로 해남현(海南縣)에 찬배되었다가 같은 해 8월 5일에 해배되어 다시 서용되기도 했다. 수신자 권계학은 자는 성집(聖集)‧성박(聖博), 호는 죽암,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공조정랑‧병조정랑‧연원찰방 등을 역임했다. 연원찰방을 끝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1774년(영조 50)에 오죽헌 근방에 청풍당(淸風堂)을 지은 뒤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1788년(정조 12) 1월 18일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지난번 상대를 만났을 적에 제대로 이야기 나누지 못하여 여태 서운했었는데, 오늘 상대의 편지를 받고 이를 통해 섣달 추위에 정무 보는 생활이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기쁘고 위로된다고 했다. 자신은 어버이께서 평안하시고 자신도 한가롭게 된 근황을 전했다. 상대가 세의(歲儀)로 보내 준 여러 음식물들은 매우 감사하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관인들끼리 세의나 선물을 주고받던 관행을 확인할 수 있다.
- · 『英祖實錄』 『承政院日記』 국토지리정보원,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진한엠앤비, 2015(국토지리정보원 사이트 pdf) 임호민, 「조선조 명문가의 재도약 과정과 향촌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 -강릉거주 안동권씨 청풍당淸風堂 가문을 중심으로-」, 『강원사학』39(강원사학회), 2022
참고자료
원문
頃奉未穩 迨切悵恨 卽拜惠札 以審嚴冱 政履佳勝 欣慰不淺 服人 親衙平安 身界優閑 餘外無可言 惠饋諸種歲儀 深領厚意 珍謝曷已 餘只希餞迓增吉 姑不宣 伏惟照在 謹謝狀上 丙戌 臘月 十六日 服人 商芝 頓
連源郵軒 回納 磚洞 李承旨 謝狀 [着圖書] [手決]謹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