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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 권진응 간찰(權震應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331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8년 권진응 간찰 / 權震應 簡札
- ㆍ발급자
-
권진응(權震應, 1711~1775)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한위(權漢緯, 1743~)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8년 4월 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戊子 四月 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1.8 × 28.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68년 4월 6일, 권진응(權震應, 1711~1775)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선물을 보내기 위해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무자년(1768) 4월 6일에 권진응(權震應, 1711~1775)이 상대의 안부를 묻고 선물을 보내기 위해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病宗’으로 표기하여 병에 걸려 지낸다는 표현과 함께 수신자와는 같은 문중(안동권씨) 출신의 종친 관계를 나타내었으므로 ‘震應’은 ‘權震應’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름만 그대로 직서하고 이름 다음 별다른 결사가 없는 것으로 보면 수신자보다 다소 연배가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權注書’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수신자는 안동 권씨 청풍당 문중 일원 가운데 ‘주서(注書)’에 재직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발급연도와 본문의 내용에 드러나는 정황상 수신자는 읍죽와(挹竹窩) 권한위(權漢緯, 1743~?)로 추정된다. 본문에서 언급된 ‘과거 참방 소식[榜聲]’은 권한위가 이 해 식년시 문과에 급제한 것을 가리킨다. 그는 과거에 급제한 뒤 같은 해 3월 24일에 채홍리(蔡弘履)를 대신하여 가주서(假注書)에 제수되는데, 이 간찰은 4월 6일에 발급되었으므로 피봉에 기록된 ‘권주서’는 이 때문에 그렇게 적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과거에 급제한 출신자로서 이제 막 초사한 상대에게 발급자가 말한 당부의 말은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교훈을 줄 수 있다. 발급자 권진응은 자는 형숙(亨叔), 호는 산수헌(山水軒),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정성(權定性),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의 증손이다.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의 문인으로서,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후 1770년(영조 46) 초선(抄選)에 의해 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를 지냈다. 동 문중 소장 간찰 가운데 <무자년(1768) 4월 5일 종말(宗末) 권중정(權中正) 간찰>의 발급자 권중정이 권진응의 아들로서 수신자 측과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수신자 권한위는 자는 장오(章五), 호는 읍죽와,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계학이다. 1768년(영조 44) 무자 식년시 병과 19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가주서를 시작으로 목릉별검‧전적‧감찰‧병조정랑‧지평‧정언‧고산찰방(高山察訪)‧장령‧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상대의 과거의 합격 방에 관한 소식을 듣고 매우 기쁘다고 하면서,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미 영화롭게 돌아가 어버이 모시며 더욱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모름지기 한 번 급제 한 것으로 능사를 삼을 것이 아니라 더욱 옛 사람의 책을 읽어서 세상에 필요하고 임금을 잘 섬기는 바탕으로 삼기를 당부하였다. 자신은 병들고 나태하게 지낸다고 하였고, 마침 조 군(曺君)이 지나는 인편을 만나 축하하는 편지를 부친다고 하면서 삼가 잘 살펴달라고 했다.
- · 『承政院日記』 『萬家譜』(8책 113면, 한국학자료센터 인물관계정보) 임호민, 「조선조 명문가의 재도약 과정과 향촌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 -강릉거주 안동권씨 청풍당淸風堂 가문을 중심으로-」, 『강원사학』39(강원사학회), 2022
참고자료
원문
省式 榜聲入耳 令人聳喜 不審今已榮歸 侍歡益吉否 須勿以一第爲能事 益讀古人書 爲需世事君之地 如何 震 病憒伎倆 益復懶散 無可言者 適逢曹君行 爲付賀儀 伏惟諒在 戊子 四月 六日 病宗 震應
權注書 案下 省式謹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