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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329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88년 이형원 간찰 / 李亨元 簡札
- ㆍ발급자
-
이형원(李亨元, 1739~1798)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한위(權漢緯, 1743~)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88년 2월 1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二月 望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7 × 40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88년 2월 15일에 이형원(李亨元, 1739~1798)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미상년(1788년 추정) 2월 15일에 이형원(李亨元, 1739~1798)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朞服弟’로 표현하여 평교간이면서 당시 기복상제(朞服喪制)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權持平 直廬’라고 기록하고 있어 수신자는 안동 권씨 청풍당 문중 일원 가운데 ‘지평(地平)’에 재직했던 인물로 당시 직소(直所)에 있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 등을 참조하면 해당 문중의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은 지평에 제수된 이력을 찾을 수 없고, 그의 차자인 읍죽와(挹竹窩) 권한위(權漢緯, 1743~?)가 1788년(정조 12) 1월 16일에 지평에 제수된 이력이 있으므로 수신자는 권한위일 가능성이 높다. 본문에서 언급된 ‘지피(持被)’는 일반적으로 ‘지피직숙’을 가리킨다. 즉 관원이 자신이 소속된 관청에서 숙직하는 번을 서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 때 이불을 가지고 가므로 이러한 명칭으로 통용되었다. 한유의 「송은원외서(送殷員外序)」에 전거가 있다. 수신자 권한위가 당시 지평에 재직하면서 사헌부 직소에서 숙직하던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통(臺通)’은 대간(臺諫) 통망(通望)을 의미하는 것으로 상대가 대간인 지평에 제수 된 것은 공의에 의해 당연한 것이라는 말을 한 것이다. 이어서 언급된 수신자의 부친의 ‘비옥지영(緋玉之榮)’은 당상의 품계에 오른 영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승정원일기』를 참조하면 권한위의 부친 권계학은 1788년(정조 12) 1월 18일 이비정사(吏批政事)에서 전좌랑(前佐郞)이자 시종신 권한위의 부친으로 나이가 70이 되어 정3품 상계이자 당상관의 자급인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법전의 “시종신의 부친‧곤수신의 부친으로서 70세가 된 자는 매 세초에 이조‧병조에서 초계하여 가자하되, 가선대부 이상은 품계가 변경되도록 초자할 수 없다.[侍從臣父·閫帥父年七十者, 每於歲初, 吏·兵曹抄啓加資, 而嘉善以上, 毋得燮品超資.]”라고 한 규정을 따른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관인들의 생활이나 가자 등의 경사가 있을 때 관련된 물품을 원조하고 빌려주는 일 등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이형원은 자는 선경(善卿), 호는 남계(南溪), 본관은 전주(全州), 부친은 이방현(李邦賢)이다. 1761년(영조 37) 신사 정시 병과 23위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검열‧헌납‧정언‧회양부사‧승지‧의주부윤‧전라좌도수군절도사‧대사간‧충청도관찰사‧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수신자 권한위는 자는 장오(章五), 호는 읍죽와,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계학이다. 1768년(영조 44) 무자 식년시 병과 19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가주서를 시작으로 목릉별검‧전적‧감찰‧병조정랑‧지평‧정언‧고산찰방(高山察訪)‧장령‧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처음, 상대가 여러 달 지피직숙(持被直宿)하는 기거생활이 여러모로 보중되고 있다는 안부를 어제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대통(臺通)은 공의(公議)가 소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상대의 부친이 당상에 오른 영화는 매우 축하한다고 하면서, 홍대(紅帶)는 비록 새 물건은 아니지만 홍색이 바래지 않은 것이어서 이에 올려드리니 다음 인편을 통해 보내달라고 했다. 자신의 근황은 여전하면서도, 세초부터 연이어 상제(喪制)를 당해 비통 속에서 날을 보낸다고 하였다.
- · 『承政院日記』 『大典通編』 「吏典‧老人職」 임호민, 「조선조 명문가의 재도약 과정과 향촌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 -강릉거주 안동권씨 청풍당淸風堂 가문을 중심으로-」, 『강원사학』39(강원사학회), 2022
참고자료
원문
昨得閱月持被起居萬重 臺通公議所在 而春府丈緋玉之榮 豈勝欣賀 紅帶雖非新件 紅色不渝 玆仰呈 須因便送上 如何 曾已納拜 政切欣悅矣 朞服弟 昨狀 與歲初連遭重制 悲痛度日 無足仰喩 因便申候 不備 二月 望 朞服弟 亨元 頓
權持平 直廬 傳納 肅 省式謹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