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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318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7년 홍응보 간찰 / 洪應輔 簡札
- ㆍ발급자
-
홍응보(洪應輔, 1702~1770)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7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7년 7월 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亥七月初五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4.8 × 44.9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67년 7월 5일 홍응보(洪應輔, 1702~1770)가 권계학(權啓學, 1716~1788)에게 쓴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767년 7월 5일 홍응보(洪應輔, 1702~1770)가 권계학(權啓學, 1716~1788)에게 쓴 간찰이다. 홍응보는 1735년 을묘년 식년시에서 진사 3등으로 입격했고 영조 18년인 1742년에 병과 5위로 급제했다. 정언(正言)‧지평(持平)출 거쳐 헌납(獻納)에 이르렀다. 피봉에서 홍헌납이라고 말한 까닭이다. 천성이 강직하고 세속을 따르기 싫어하여 벼슬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관직을 사직하고, 경서(經書)에 전념하였다. 수신자 권계학의 자는 성집(聖集), 호는 죽암(竹巖)이고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오죽헌 권처균(權處均)의 후손이다. 1747년(영조 2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 예조 정랑, 병조 좌랑 등을 지냈다. 문집으로 필사본 『죽암유고(竹巖遺稿)』 5권 3책이 전한다. 1765년~1767년 까지 연원찰방(連原察訪)을 역임하였다. 연원찰방으로 재직하는 동안 풍산 홍씨 집안과의 교류가 확인된다. 홍응보와의 관계도 풍산 홍씨 집안과의 친분관계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호초(胡草)는 어지럽게 쓴다는 의미로 병으로 혹은 급한 상황에서 여유 없이 글을 쓸 때 적는 말이다. 권계학의 글에는 특히 익원산을 보내준 것과 관련된 감사의 말이 많다. 익원산(益元散)은 말 그대로 원기를 보익하는 가루약으로 여름철 열병에 사용되는 약이다. 더위로 인해 물을 많이 마시지만 여전히 열이 나는 상태에서 사용한다. 권계학이 익원산을 보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간찰이다.
우선 서식을 줄인다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의외로 서신을 받고 삼복더위에 체후가 무탈하다 하시니 매우 위로가 된다고 했다. 더해서 자신은 겨우 부모님의 장례를 지낸 후라 매우 망극한 심정이 새롭다는 것으로 인사말을 마쳤다. 익원산을 보내주셨는데, 마침 더위에 병으로 고생하던 중이라 참으로 다행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자신이 병으로 누워있는 중이라고 더 말하지 않는다 하고 사정을 헤아려달라고 부탁하면서 글을 맺었다.
원문
連原郵軒 回納
洪獻納 謝狀 省式謹封
省式 意外承拜惠札 仍審極熱 政履神相 慰仰區區應 纔過親葬 罔極如新 惠來益元散 適及於暑病苦劇之中 良幸良幸 餘方病臥 胡草 不宣 伏惟下照 謝狀上
丁亥七月初五 緬服人 應輔 狀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