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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316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6년 권중정 간찰 / 權中正 簡札
- ㆍ발급자
-
권중정(權中正)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7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6년 9월 17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戌九月十七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17.5 × 34.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66년 9월 17일 권중정(權中正)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보낸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766년 9월 17일 권중정(權中正)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보낸 간찰이다. 권중정은 송시열의 고제인 권상하의 현손이다. 권상하에서 권중정으로 이어지는 가계는 다음과 같다. 권상하(權尙夏, 1641~1721)-권욱(權煜)-권정성(權定性)-권진응(權震應 1711~1775)-권중정(權中正). 삼척부사를 지낸 권제응(權濟應)은 권정성의 형제인 권양성(權養性)의 아들로, 권진응의 사촌이다. 1767년 10월 16일의 간찰 A006_01_A00129_001에서 권중정은 자신을 황강종인(黃江宗人)으로 표기했는데 황강은 충청도 청풍군 한수면 황강리로 권상하가 한수재를 짓고 평생 은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다. 같은 안동권씨 이므로 종인이라고 표기했다. 권상하는 우암 송시열의 고제로 제주도로 유배되었던 송시열이 국문을 받기 위해 상륙하자 스승을 시봉했으며, 정읍에서 송시열이 사사될 때 스승에게서 의복과 책을 선물로 받았다. 수신자 권계학(權啓學, 1716~1788)이 연원찰방으로 있을 때 특히 권상하의 증손인 권진응 및 현손인 권중정과 왕래가 많았다. 권계학의 자는 성집(聖集), 호는 죽암(竹巖)이고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오죽헌 권처균(權處均)의 후손이다. 1747년(영조 23)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 예조 정랑, 병조 좌랑 등을 지냈다. 문집으로 필사본 『죽암유고(竹巖遺稿)』 5권 3책이 전한다. 권계학이 연원찰방으로 있던 시기는 1765~1767년 말까지다. 권중정과 권계학은 당파적으로 모두 노론이라는 인연도 있다. 미노(迷奴)는 상대에 대해 자신의 종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먼저, 지난 번에 보내드린 서신을 읽어보았는지 물었다. 이어 근래의 가을 여정에 있어서 복받기를 바란다 하고 위로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지극하다고 했다. 자신은 아직 돌아가지 못한 채인데 연이어 여행중의 서신에 관해 들어보니, 한결같이 편안한데다가 기후가 맑고 조화로워서 여정에 매우 적합하다 하니 참으로 다행이라고 했다. 이전에 부탁한 풀가루는 여분의 저축한 것이 있는지 묻고 한두말이라도 나눠달라고 부탁했다. 또 부엌칼을 더해주고 공전을 준비해달라고 노비의 편에 부탁해두었는데 7~8개월이 넘도록 연락이 없어서 매우 괴이하게 여겨 노비에게 물으니 본래 받아온 일이 없다고 한 일을 전한 후, 그 놈이 한 일이 참으로 통렬하니 엄히 장을 쳐서 책임을 묻고 찾아서 보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끝으로 우선은 다 말하지 못한다 하고, 살펴주십사 하는 말로 끝냈다.
원문
連郵 入納
閒主齋 候書 謹封
頃書登照未 日間恭惟旅履 履玆霜重百福 仰慰且溯之至 宗末 親行 姑未歸 連聞行信 一味安穩 氣淸日和 游笻甚適宜 可勝私幸 前托膠末 果有餘儲否 一二斗 幸分惠如何 就食刀爲添 辦備工錢 給貴治下漢期爲名驛人 已過七八朔餘 以傳送於迷奴便 而無來傳之事 故甚恠之 問于迷奴 則元無受來之事 此漢所爲 萬萬痛烈 幸卽猛加杖 責而覓惠 至望耳 姑不宣 伏惟下察
丙戌九月十七日 宗末 中正拜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