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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306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5년~1767년 정지환 간찰 / 鄭趾煥 簡札
- ㆍ발급자
-
정지환(鄭趾煥, 1730~1763)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7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5.8 × 41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65년부터 1767년 사이에 정지환(鄭趾煥, 1730~1763)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보낸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765년부터 1767년 사이에 정지환(鄭趾煥, 1730~1763)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보낸 간찰이다. A006_01_A00317_001은 1767년 4월 5일 정겸환(鄭謙煥, 1727~1813)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쓴 간찰로 피봉에 루암(樓巖)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간찰과 같다. 간찰에는 성이 없이 단순히 지환으로 되어 있는데 환을 돌림자로 쓰는 정겸환과 같은 항렬의 정지환으로 보인다. 정종은(鄭宗殷)을 시조로 하는 영일정씨는 송강 정철의 증손자로 청안현감을 지낸 정경연(鄭慶演)이 병자호란을 피해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로 이수하면서 충주에 세거하게 되었다. 정경연이 충주의 입향조인 셈이다. 다락바위를 가리키는 루암(樓巖)은 충주시 중앙답면 법정리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정지환의 거주지였을 것이다. 정지환은 단순히 특정한 업무를 보기 위해 이곳에 잠시 머물렀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해람(解纜)이라고 해서 배를 띄운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충주에서 배를 타고 한양으로 출발할 예정이었을 가능성이 있고, 연원찰방으로 있던 권계학이 중앙의 관리로서 충주에 있던 강지환에게 선물을 보낸 것에 대한 답신으로 볼 수 있다. 권계학의 본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권계학은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공조정랑‧병조정랑‧연원찰방을 역임했다. 1788년(정조 12) 1월 18일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연원찰방을 끝으로 고향인 강릉에 와서 청풍당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작왕(昨枉)은 상대의 방문을 이르는 말이고 태하(迨荷)는 감사하다는 뜻이다.
지난번에 친히 와주셔서 감사한데 곧 서신을 보내주시니 더욱 위로가 된다 하고, 더해서 하물며 밤 사이에 무탈하셨다고 하는데 있어서야 어떻겠는가라고 했다. 자신은 모레 닻을 풀고 출발할 것인데 주신 것으로 배에서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니, 그 성의가 참으로 고맙다고 했다. 이만 줄이고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원문
郵軒 回傳
樓巖 謝狀 省式謹封
昨枉迨荷 卽書尤慰 矧審夜來 起居萬勝者乎 趾煥 再明卽解纜矣 惠物可作舟中之饌 多荷勤意 餘姑不宣狀
卽日 趾煥 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