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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년 정발 간찰(鄭墢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305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7년 정발 간찰 / 鄭墢 簡札
- ㆍ발급자
-
정발(鄭墢)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7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7년 3월 2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亥三月卄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5.3 × 36.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봄철 계절인사와 안부와 근황을 전하는 편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767년 3월 26일 제천현감인 정발(鄭墢, )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보낸 간찰이다. 정발은 동래정씨로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1765년 제천현감을 제수받았다. 권계학의 본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권계학은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공조정랑‧병조정랑‧연원찰방을 역임했다. 1788년(정조 12) 1월 18일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권계학이 현재의 충주시 연수동 지역에 있었던 연원역의 찰방(察訪)으로 있던 시기는 1765~1767년다. 이런 이유로 연원우헌(連原郵軒) 즉, 연원우역(連原郵驛)이라고 수신지를 적었다. 간찰에서 평교 사이에 지방 수령의 안부를 물을 때는 政履 혹은 政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곳에서 정구라고 한 것은 역을 담당하는 찰방이었기 때문이다. 연원찰방으로 있던 권계학이 제천현감으로 있던 정발에게 유기 그릇을 부탁한데 대해 답신이다.
봄철 고달프게도 바람이 많은 중에 우러러 그리움이 매우 깊다고 하고 이번에 내려준 간찰을 받고서 삼가 근래에 무탈하심을 알게 되었으니 매우 위로된다는 말로 인사말을 삼았다. 이어 자신은 학질에서 겨우 회복되었으나 원기가 얇은 얼음장처럼 녹아내렸으니 참으로 견디기가 어려워서 근심되고 서글픈 마음이라고 했다. 말씀하신 유기는 마땅히 속히 주조해야 하겠는데, 근래 쇠갚이 매우 높아서 우선 십여관을 빠른 편에 부쳐 오도록 한 후에야 시작할 수 있겠고, 가격은 결국 만든 양을 헤아려서 결정한다는 말을 전했다. 번거로운 일이 많아서 우선 이만하고 서식을 갖추지 못한다고 하고 잘 살펴달라는 말을 전했다.
원문
連原郵軒 回納
堤倅 謝狀 謹封
春日苦多風 懸仰政深 此承下札 謹審近日 政駒萬安 何等仰慰 墢 痁患纔却 而元氣凘鑠 實難支吾 愁憐愁憐 錄示鍮器 謹當速令造鑄 而近來鐵價甚高 先以十餘貫 速便付來然後 可以始役 而價本畢竟造成量衡後 决定云耳 餘撓 姑不備 伏惟下照 謹謝狀上
丁亥三月卄六日 鄭墢 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