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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304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6년 권운 간찰 / 權(扌+運) 簡札
- ㆍ발급자
-
권운(權(扌+運))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7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6년 3월 13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戌三月十三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7.3 × 29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66년 3월 13일 권운(權(扌+運))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보낸, 일전에 빌려 준 모종의 물품 혹은 비용에 관해 돌려줄 것을 요청하는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766년 3월 13일 권운(權(扌+運))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보낸 간찰이다. 권운에 관해서는 상고하지 못했다. 내용상 강릉에 세거한 안동 권씨 일족의 구성원으로 추정되는데, 오죽헌과 청풍당의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다. 권계학의 본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권계학은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공조정랑‧병조정랑‧연원찰방을 역임했다. 1788년(정조 12) 1월 18일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권계학이 현재의 충주시 연수동 지역에 있었던 연원역의 찰방(察訪)으로 있던 시기는 1765~1767년다. 이런 이유로 연원우헌(連原郵軒) 즉, 연원우역(連原郵驛)이라고 수신지를 적었다. 요요(撓撓)는 객요, 극요, 요심과 같다. 손님이 많아서 분주히 지내는 일이 많다는 뜻으로, 간찰의 말미에 종종 쓰는 용어다. 撼頓은 몸의 피곤함을 이르는 말이다. 권계학이 강릉에 들렀다가 부임지인 충주로 떠난 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한 말일 것이다. 앙복은 병에서 회복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저편(邸便)은 지방에서 서울에 파견된 경저리가 임시로 묵으면서 그 지방 관청의 일을 대행하던 경저리 혹은 각 감영에 속하여 감영과 각 고을 사이의 연락을 취하던 영저리를 이르는 말이다. 일전에 빌려 준 모종의 물품 혹은 비용에 관해 돌려줄 것을 요청하는 글이다.
일전에 몇 번이나 뵈었는데 오랫동안 뵙지 못하다가 뵈었으니 그 기쁨과 위로됨이 컸으나 매번 들고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편안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멀리 이별하게 되니 이 마음이 참으로 황망하며 상대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오늘은 날이 맑다 하고, 삼가 노곤한 가운데 손상을 당한 곳은 없는지 묻고 체후가 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자신은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겨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자신은 여전히 못난 모습으로 지내고 있어서 듣지는 못하고 있으나 임금의 환후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하니 신하와 백성들의 근심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바라는 바는 지난 번에 대면할 때 이미 다 말했으니 이미 다시 상대를 어지럽게 만들 일은 아니라고 했다. 일전에 마침 믿을 만한 이가 있어서 감히 상대의 후의를 믿고 다른 이의 긴급한 물품을 먼저 보냈는데, 만약 오랫동안 갚지 않으면 그 사람의 독촉을 받게 되어 심히 낭패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상대의 후의를 보건대 어찌 자신으로 하여금 곤궁하게 하겠는가 하고 만약 옮겨올 수 있다면 빠른 시일 내에 살펴주셔서 근심되고 곤란한 걱정을 면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미 다른 이의 물건을 빌려준 것이니 사들인 것이라고 해도 논할게 아니며 양도 모두 정리에 따를 일이니 상황에 맞춰서 잘 주선해 달라고 했다. 이별한 후에 그리워 하는 마음이 뚜렷한데 이번에 부탁하게 된 것을 경저리 편에 부치니 어느 세월에 전달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원문
連原郵衙 卽納
權郎廳 候狀 謹封
向者數次奉拜 出於積阻之餘 迄不勝欣慰 而每値撓撓之時 不得穩攄 而遽爾遠別 此心悵恾 有非尋常 未知知事亦同此懷否也 卽日淸和 謹問撼頓之餘 能無所損 而體內動止萬吉否 伏溸且慮 無任區區 宗末 宿劣如前 無足奉聞 上候尙未夬復 臣民之悶迫 曷有其極 所懇事 已悉於頃者對面之時 今不必更溷 而日前適有鄙家信便 故敢恃知事之厚誼 而他人緊急之物 先爲貸送 以爲造夏初之地 而若久爲不酬 則被人之督促 而狼貝極矣 然知事之厚眷 豈可使宗末爲厄困哉 如有推移之道 則幸望從近俯念 俾免悶困之患 如何如何 旣已貸人之物 則貿布與否 初不足論也 多少都情 知事臨機處事 善爲周旋耳 餘萬別懷耿耿 更此申屬 付諸邸便 未知何時入覽也 不備
丙戌三月十三日 宗末 [扌+運]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