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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302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7년 김재정 간찰 / 金在正 簡札
- ㆍ발급자
-
김재정(金在正)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7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7년 3월 10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三月十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8.2 × 38.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67년 3월 10일 김재정(金在正)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보낸, 처의 상을 당한 김재정이 장례를 치를 비용이 부족하니 도와달라고 청하는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767년 3월 10일 김재정(金在正)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보낸 간찰이다. 권계학의 본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권계학은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공조정랑‧병조정랑‧연원찰방을 역임했다. 1788년(정조 12) 1월 18일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권계학은 1765~1767년에 현재의 충주시 연수동 지역에 있었던 연원역의 찰방(察訪)으로 있었다. 이런 이유로 연원우헌(連原郵軒) 즉, 연원우역(連原郵驛)이라고 수신지를 적었다. 참고로 권계학의 호는 죽암(竹巖)으로 죽암유고(竹庵遺稿)를 남겼는데, 2023년 율곡연구원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관찰사의 부관격인 아사(亞使) 김재정에 관해서는 상고하지 못했다. 형포(荊布)는 형처(荊妻)와 같은 뜻으로 자신의 아내를 이르는 말이다. 시하(侍下)는 일반적으로 부모를 모시는 상대에 대한 존칭인데, 이 경우에는 자신을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망조(罔措)는 당황하여 갈팡질팡한다는 뜻이다. 미전상봉미이(未前相逢未易)의 미전은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도 또 후에도 만나기 어렵다는 말을 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처의 상을 당한 김재정이 장례를 치를 비용이 부족하니 도와달라고 청하는 글이다. 전체적으로 글이 급박하여 발급자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서식을 줄인다고 한 후 이별한 지 한참이나 되었으니 서글픈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요즈음에 무탈하기를 바란다하고 그리움이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지난 겨울에 갑자기 아내의 상을 당하였으니 자신의 마음을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오는 21일에 장례를 치루기로 했는데 가난한 집안에서 이런 일을 당했으니 당황함이 없을 수 없어서 근심할 뿐 이라고 했다. 이어 상대인 권계학이 자신의 집안 일을 도와주리라 생각되니 가벼이 보지 마시고 반드시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하면서, 그러면 뒷날 도움을 받을 일이 없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자신은 그렇게 할 것이라 하고 장례를 치른 후 서쪽으로 가려 하는데, 그 전에는 서로 만나기가 어려울 것이니 그 슬픔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고, 반드시 본역의 주인 편에 회신을 달라고 했다.
원문
連原郵軒 入納
亞使 候狀 省式謹封
省式 奉別頗久 瞻悵何狀 伏惟此時 起居萬勝 溸仰無已 第昨冬奄遭荊布之喪 侍下情理 不可形言 窆事以今二十一日定行 而窮家當此時 凡百無非罔措 憫事憫事 想左右於弟家事 故必不恝視 須拔例顧助之地 如何 後豈無相報之道耶 是企 弟則窆事後 欲作西行 而未前相逢未易 悵缺何言 必以本郵主人便回示也 餘姑不宣 伏惟下照
丁三月十日 期服弟 金在正 狀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