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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조정화 간찰(趙庭和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293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2년 조정화 간찰 / 趙庭和 簡札
- ㆍ발급자
-
조정화(趙庭和, 1769~)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오죽헌(烏竹軒)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42년 1월 1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寅正月十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5 × 44.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42년 조정화(趙庭和, 1769~?)가 오죽헌 청풍당에 보낸 답신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42년 조정화(趙庭和, 1769~?)가 오죽헌 청풍당에 보낸 답신이다. 조정화의 자는 수지(修之)이고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1798년(정조 22) 식년시(式年試)에서 진사(進士) 3등(三等) 72위로 입격했다. 교리, 사간, 승지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부친은 통정대부를 지낸 조운기(趙雲紀)다. A006_01_A00097_001과 A006_01_A00298도 조정화의 간찰이다. 오죽헌과 서신을 통해 교류를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조정화가 필동에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복좌(服座)는 1년 이하의 상복을 입은 사람을 칭하는 복인(服人)과 같다. 노년에 그리움과 비탄을 기술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헤어진 후 양쪽의 소식이 모두 끊겨서 대관령 쪽의 구름을 보며 암담함을 더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으로 인사말을 삼았다. 이어 편지를 받고 무탈한 것을 알고 참으로 위로가 되었다고 하고, 모산(茅山, 불명)의 상사는 통곡할 뿐으로 다시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겨 있다가 갑작스레 이런 말을 듣게 되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다만 슬픔이 겹쳐질 뿐이라고 표현하고, 자신은 쇠약해져서 병환이 이어진 지 네 해나 되었는 바, 움직일 때는 사람이 필요할 정도라 살아 있다고 하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끝으로 대관령 동쪽의 소식을 받기 어려운 바 형세가 정말로 그러하니 슬픔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면서 글을 맺었다.
원문
竹軒服座
筆洞 謝狀
一別之後 消息兩絶 瞻望嶺雲 秪增悵黯而已 卽承審 起居益勝 慰荷萬萬 第茅山喪事 慟哭慟哭 夫復何言 積年睽違之餘 遽承此言 此何人理 只增悲憾而已 弟 衰病日侵 今至四歲 一直苦劇 行步不利 轉側須人 命雖不絶 無異籧篨 此何身世 秪自悶憐而已 近日則大嶺以東 消息莫憑 理勢固然 而撫念疇昔 不勝悵奭而已 姑不宣狀式
壬寅正月十六日 弟 庭和 頓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