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94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6년 유하주 간찰 / 兪廈柱 簡札
- ㆍ발급자
-
유하주(兪廈柱)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88)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 利仁수취지역 連原 郵軒
- ㆍ발급시기
-
1766년 11월 2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戌 至月 卄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5 × 4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병술년(1766) 11월 29일에 제(弟) 유하주(兪廈柱)가 연원도찰방 권계학과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병술년(1766) 11월 29일에 제(弟) 유하주(兪廈柱)가 연원도찰방 권계학과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弟’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발급자 정보로 “利仁 俞生 候狀”이 기록되어 있어 발급자는 당시 ‘이인(利仁)’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인은 충청도 공주 소재지로 충청도 일부 지역에 설치된 역도인 이인도(利仁道)의 중심역인 이인역(利仁驛)이 있었던 곳이다. 이인도의 속역은 용전(龍田), 은산(恩山), 유양(楡楊), 숙홍(宿鴻), 남전(藍田), 청화(靑化), 두곡(豆谷), 신곡(新谷), 영유(靈楡)이며,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이곳에 종9품 역승(驛丞)을 두었다가 『속대전(續大典)』에서 종6품 찰방(察訪)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스스로 유생(俞生)이라고 하여 성이 유씨임을 알 수 있다. 수신자 정보로 “連原 郵軒 記室 入納”이 기록되어 있어 수신자는 당시 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에 재직 중이던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임을 알 수 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근 20년간 상대와 격조했어도 그리웠다고 하면서, 동짓달 추위에 상대의 정무보시는 건강과 일상이 여러모로 편안하시리라 생각되니, 위로되고 그립다고 했다. 자신은 갑술년 즈음에 천안(天安)으로 내려왔다가 경진년 즈음에 처가(妻家) 근방으로 옮겨 살고 있고, 그간 많은 고생을 했었음을 언급하였다. 본론으로, 자신의 집에 대마(大馬) 1필이 있는데 가격도 비싸지 않고, 상대가 다스리는 역도에 말이 부족할 것 같다고 하면서 이 말을 사 주기를 요청하였다. 자신은 순상(巡相)의 적부(嫡婦) 집안으로써 지친이기 때문에 영문(營門)을 통하여 이러한 안부와 요청을 하는 것이므로 곧바로 답을 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의 병에 쓸 약청(藥淸)도 요청하고 있다. 추록에는, 한나라 장량(張良)이 이교(圯橋)에서 황석공(黃石公)을 만난 고사를 언급하며 상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간의 안부, 근황 및 조선후기 역도를 다스리던 찰방의 일상, 개인 소유의 말을 유력자의 친분을 통해 역관에 매매 청탁을 했던 정황, 관을 통해 약재를 수급하려 했던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유하주(兪廈柱)는 충청도 이인에 거주하였다는 정보 외에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다. 다만 『일성록』 1792(정조 16) 1월 28일 기사에, 각 도에서 올라온 상언(上言)에 대한 판하(判下)를 하면서 “직산(稷山)의 고(故) 학생(學生) 유하주(兪廈柱)의 처 이씨(李氏)”의 후사를 세우게 달라는 상언의 대략이 확인되므로, 이 간찰의 내용과 함께 당시 천안, 공주 일대에서 거주하며 활동했던 인물임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유척기(兪拓基)의 『지수재집(知守齋集)』 권12 「외조고정언이공묘표(外祖考正言李公墓表)」에 이두악(李斗岳, 1644~1687)의 증손서(曾孫壻)로 동일 인명이 확인된다. 이 간찰이 발급된 해의 충청감사는 이중호(李重祜)였는데, 발급자의 처는 이두악의 손자인 이의업(李宜業)의 딸이고 이중호는 이의진(李宜振)의 아들로써 같은 용인이씨 문중 일원이 된다.
수신자 권계학은 자는 성집(聖集)‧성박(聖博), 호는 죽암,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병조좌랑‧공조정랑‧연원찰방 등을 역임했다.
- · 『經國大典』 『續大典』 『承政院日記』 『日省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참고자료
제목 없음
連原 郵軒 記室 入納
利仁 俞生 候狀 [手決] 謹封
阻奉 迨近卄載 尋常
瞻仰 伏惟至寒
兄政履萬安 伏慰且溯
不任 弟 甲戌年間 下來
天安 庚辰年間 移接
於婦家近處 中間備嘗
艱辛 今則凡百轉益難
堪 冬暖呼寒 年豊啼
飢 正道弟生涯也 就告
鄙家 適有一匹大馬 步
品凡百 可合於驛大馬
價亦不多 想/
貴驛連有馬闕 果能爲弟
善捧耶 此便若
回敎 則從近當起送耳 馬
若不合於驛馬 則豈可如是/
煩累耶 巡相適婦家至親
故 因營門 玆以付候 幸其
賜答如何 想兄有綈袍戀戀
之意 可能付惠救窮之資耶
荊病久苦
藥淸甚艱
或可
覓惠否
餘只冀歲
暮 起居增相
姑不宣 伏
惟
兄 下照 狀上/
丙戌 至月 卄九日 弟 廈柱 頓
弟則窮寂中 每每想
兄 而兄亦能不忘圯橋
昔年事耶 其間許多
年 若隔前生 浮世事
良可歎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