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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6_01_A00192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7년 이규영 간찰 / 李圭永 簡札
- ㆍ발급자
-
이규영(李圭永, ?~?)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88)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 壯洞수취지역 連源 郵軒
- ㆍ발급시기
-
1767년 9월 1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亥 九月 初吉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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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35 × 48.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정해년(1767) 9월 초하루[初吉]에 복인(服人) 이규영(李圭永)이 연원도찰방 권계학과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정해년(1767) 9월 초하루[初吉]에 복인(服人) 이규영(李圭永)이 연원도찰방 권계학과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자신을 ‘服人’로 표기하여 당시 복상(服喪) 중인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별도의 관계호칭은 사용하지 않았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발급자 정보로 “壯洞 李生 候帖”이 기록되어 있어 발급자는 당시 장동(壯洞, 弘濟洞 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일대)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신자 정보로 “連源 郵軒 入納”이 기록되어 있어 수신자는 당시 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에 재직 중이던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임을 알 수 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가을에 보낸 서찰에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괴상한 요즘 날씨에 정무 보시 생활이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의 근황으로 둘째 아들이 요절하여 참통한 심경을 언급하였다. 본론으로, 자신의 농장을 검칙(檢飭)하는 일에 관해, 상대가 유념하여 박 무관[朴弁]을 불러 올해 농사가 어떠한지를 상세히 물어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소출을 잘 거두어 올려 보내라는 부탁까지 해 주었는지 물었다. 조 충주(趙忠州) 어른이 본읍 수령으로 있을 때 특별히 박 무관에게 신칙하여 수송하는 일을 본인이 직접 담당하시는 것과 다름없이 하셨는데, 체차되어 돌아가신 뒤로 다시 그렇게 할 길이 없고, 새로 온 수령도 평소에 잘 아는 사이가 아니므로 상대에게 부탁하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수고롭더라도 박 무관을 자주 불러 보고, ‘각별히 잘 수습해 가까운 때에 믿을 만한 인편을 통해 부쳐 보내라’는 내용으로 힘써 부탁해 주어 우리 집안 가족들이 솥을 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 달라는 등의 부탁을 했다. 추록에는 부탁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면서 꼭 이루어 달라고 했다. 또한 박 무관에 전달 부탁한 서찰은 잘 전달되었는지도 물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간의 안부, 근황 및 조선후기 역도를 다스리던 찰방의 일상, 지방 소재의 전답 소출을 관의 공권력을 통해 수송을 청탁했던 관행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이규영은 서울 장동에 거주하였다는 정보 외에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다. 본문에서 언급된 ‘조 충주(趙忠州)’는 이암(怡菴) 조덕수(趙德洙, 1714~1790)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1764년(영조40) 7월 11일에 충주목사(忠州牧使)에 제수되어 1768년(영조 44) 나주목사(羅州牧使)에 제수되기 전까지 충주목사로 재직했음이 확인된다.
수신자 권계학은 자는 성집(聖集)‧성박(聖博), 호는 죽암,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병조좌랑‧공조정랑‧연원찰방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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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제목 없음
連源 郵軒 入納
壯洞 李生 候帖 [手決] 謹封
初秋付信 想必傳
覽 而尙未承
覆 悵戀之極 繼以訝鬱 日
候乖常 未諳此際
政餘起居 甚似區區 瞻想何
嘗少弛 此漢 滾汨憂病之
餘 竟遭第二兒夭化 殘忍
慘惜 姑舍而侍下情境 尤何可
形言 就以鄙庄檢飭之意 有所
仰告 其果留念 而朴弁亦已
招見 款接詳問 其今年農事
之如何 而以善爲收斂 上送
之意 勤托否 今秋穡事 到處/
無非登豊云 未知那邊 亦然否 趙忠州
丈 在本邑時 另飭朴弁 其所收送 無異於
身親當之 一自遞歸 更無其路 新倅雖出
乃是素昧之間也 幸惟執事 旣在其
處 其所照檢另飭 情誼凡百 何可不/
若趙丈在官時乎 幸伏乞雖至
苦勞之境 勿爲攢眉 哀而憐之
朴弁頻頻招見 以各別善收拾 從
近付送於信便之意 亦爲力托以
濟上下洗鼎之望 如何如何 若非切/
急 而且非執事之間 何可容喙 亦何可煩
縷耶 其果默會否 那間或有上洛
之事否 姑無奉穩之期 臨楮尤增冲悵 不
宣 伏惟在照 謹候狀上
丁亥 九月 初吉 服人 李圭永 拜
覽此書後 看作例簡 置之尋常 則上下老少 不
但爲失望 將至於顑頷之境 果能另
念收送 則無異空給 其爲
感幸 當如何哉 更須俯
諒此情勢 而毋泛毋泛 千萬
幸甚
月前 朴弁許 所去書封 果已傳之否 尙未
見答 殊可訝鬱 此去書封 亦卽傳送 幸甚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