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85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7년 홍락명 간찰 / 洪樂命 簡札
- ㆍ발급자
-
홍락명(洪樂命, 1722~1784)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88)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767년 6월 7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7.8 × 34.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정해년(1767) 6월 7일에 홍낙명(洪樂命, 1722~1784)이 연원도찰방 권계학과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정해년(1767) 6월 7일에 홍낙명(洪樂命, 1722~1784)이 연원도찰방 권계학과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특별한 관계호칭이 없이 그대로 자신의 성명을 직서하여 상대와 동료 또는 평교 정도의 사이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발급자 정보로 “公洞 洪參議 謝狀”이 기록되어 있어 발급자는 당시 공동(公洞, 小公洞 현 서울 중구 남대문로 일대)에 거주하였고, 육조(六曹) 가운데 어느 아문의 참의(參議)에 재직 중임을 알 수 있다. 수신자 정보로 “連原 郵軒 回納”이 기록되어 있어 수신자는 당시 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에 재직 중이던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임을 알 수 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립던 중에 보내주신 서찰을 받고 이를 통해 늦여름에 정무를 보시는 건강과 일상이 여러모로 건승하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했다. 자신은 어버이의 건강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자신도 우소에서 분주하고 녹록하게 지내니 몹시 고민되는 일이라고 했다. 상대가 보내준 각종 선물은 매우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간의 안부, 근황 및 조선후기 역도를 다스리던 찰방의 일상, 선물과 같은 물품 수수 관행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홍낙명은 자는 자순(子順), 호는 신재(新齋), 본관 풍산(豐山)이며, 부친은 홍상한(洪象漢), 조부는 수은(睡隱) 홍석보(洪錫輔)이다. 형제로 항재(恒齋) 홍낙성(洪樂性) 등이 있다. 외조부 기원(杞園) 어유봉(魚有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41년(영조 17) 신유 식년시 진사 2등으로 소과에 입격하고, 1754년(영조 30) 갑술 증광시 병과 9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승정원승지‧이조참의‧사헌부대사헌‧형조판서‧병조판서‧한성판윤‧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시호 문청(文淸)이다. 저서로 『신재집』이 있다. 특히 이 간찰이 발급된 해 즈음에 그는 1767년 2월 8일에 호조참의 제수된 이력이 있어 피봉에 “洪參議”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수신자 권계학은 자는 성집(聖集)‧성박(聖博), 호는 죽암,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병조좌랑‧공조정랑‧연원찰방 등을 역임했다.
- · 『承政院日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서울역사편찬원 서울지명사전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참고자료
제목 없음
連原 郵軒 回納
公洞 洪參議 謝狀 [手決] 謹封
瞻想中 伏承
惠札 以審季夏
政履起居萬勝 仰慰區區
樂命 親候猶未快復 身亦
寓處栖栖 悶事悶事
盛惠各種 良荷
厚記珍謝 非爲物也 適擾姑
倩 不備伏惟
丁亥 六月 初七日 洪樂命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