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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자료ID
- A006_01_A00184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6년 서명신 간찰 / 徐命臣 簡札
- ㆍ발급자
-
서명신(徐命臣, 1701~1771)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88)
원문내용추정
- ㆍ지역정보
-
발급지역수취지역
- ㆍ발급시기
-
1766년 5월 20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戌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7.2 × 46.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인문판독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병술년(1766) 5월 20일에 서명신(徐命臣, 1701~1771)이 연원도 찰방 권계학의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병술년(1766) 5월 20일에 서명신(徐命臣, 1701~1771)이 연원도 찰방 권계학의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특별한 관계호칭이 없이 그대로 자신의 성명을 직서하여 상대와 동료 또는 평교 정도의 사이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발급자 정보로 “確橋 徐參判 謝狀”이 기록되어 있어 발급자는 당시 확교동(確橋洞, 鶴橋 현 서울 중구 서소문동 일대)에 거주하였고, 육조(六曹) 가운데 어느 아문의 참판(參判)에 재직 중임을 알 수 있다. 수신자 정보로 “連原 郵軒 記室 回納”이 기록되어 있어 수신자는 당시 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에 재직 중이던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임을 알 수 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번 서로 헤어진 일은 지금까지 가슴에 남아있던 차에 오늘 보내주신 서한을 받고 이를 통해 불볕 더위에 우국(郵局)에서의 일상생활이 여러모로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곱절 위로된다고 했다. 자신은 중병을 앓은 뒤로 평상을 회복할 수 없다는 근황을 전했다. 보내주신 세 종류의 선물은 잘 받았다고 하면서, 요즘 같은 무더운 날씨에 무척 요긴한 물건이라 매우 감사하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수발급자 간의 안부, 근황 및 조선후기 역도를 다스리던 찰방의 일상, 선물과 같은 물품 수수 관행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서명신은 자는 원직(元直), 호는 원와(袁窩),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부친은 서종수(徐宗秀), 조부는 서문환(徐文渙)이다. 1726년(영조 2) 병오 식년시 진사 3등으로 소과에 입격하고, 1733년(영조 9) 계축 식년시 을과 5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사간원대사간‧성균관대사성‧승정원승지‧이조참의‧충청감사‧한성판윤‧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이 간찰이 발급된 해 즈음에 그는 1765(영조 41)년 7월 24일에 한성좌윤에 제수되었고, 같은 해 11월부터 1766년(영조 42) 6월까지 군직으로 행부사직을 지내다가 6월 18일에 대사헌에 제수되었다. 참판의 경우 1763년(영조 39) 11월 29일에 공조참판, 12월 25일에 이조참판, 1764년(영조 40) 3월 11일에 병조참판에 제수된 이력이 있다. 따라서 이때는 부사직으로 있으면서 실직을 맡고 있지 않았으므로 이전 내직 관함인 병조참판으로서 피봉에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수신자 권계학은 자는 성집(聖集)‧성박(聖博), 호는 죽암,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병조좌랑‧공조정랑‧연원찰방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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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제목 없음
連原 郵軒 記室 回納
確橋 徐參判 謝狀 [手決] 謹封
向來逢別 至今依依 卽拜
惠翰 備審午炎
郵履起居 萬相區區 慰豁實倍
恒品 命臣 重病之餘 凡百落下十
層 終未能復常 勢也柰何
俯送三種 依受珍感 暑氣尤
切日用 深荷深荷 餘 天時漸向極
熱 只冀
加護 不宣 伏惟
下照 謹謝狀上
丙戌 午月 卄日 命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