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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74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2년 송정희 간찰 / 宋正熙 簡札
- ㆍ발급자
-
송정희(宋正熙, 1802~1881)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오죽헌(烏竹軒)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2년 7월 1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戌七月十二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30.5 × 45.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62년 7월 12일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오죽헌 청풍당에 쓴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62년 7월 12일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오죽헌 청풍당에 쓴 간찰이다. 권찰방은 이 간찰 수신인의 조상인 권계학이 연원찰방을 지냈던 것에서 연유한다. 송정희의 자는 문오(文吾), 본관은 은진(恩津), 송계근(宋啓根)의 아들이며 송계락(宋啓樂)에게 출계(出系)되었다. 송시열과 함께 양송으로 불리는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7대손이다. 송준길은 노론과 소론의 붕당 이전에 사망했으나 그의 후인들이 노론을 형성했고, 이로 인해 노론의 색채가 짙은 강릉지역의 유력 문중들과 대대로 교류가 있었다. 송정희는 1861년부터 1863년까지 양양부사(襄陽府使)로 재직했고, 직후 나주목사(羅州牧使)로 이임했다. 오인(午人)은 동인에서 갈라진 남인을 말한다. 12지지를 방위를 기준으로 배치하면 자(子)가 북쪽에 오(午)가 남쪽에 배치되기 때문에 남인을 오인이라고 했다.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되었는데, 남인이 송시열을 공격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의 강릉부사는 홍재우(洪在愚, 1806~?)로 1862년 7월 1일부터 1863년 7월까지 강릉부사로 있었다. 1862년에 부사가 이임된다는 것은 홍재우의 취임을 가리키는 것으로 7월 12일까지도 홍재우가 강릉 부사로 임용되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순상(巡相)은 관찰사를 가리킨다. 감사의 주 역할이 관할 지역에 대한 감사이므로 순상이라고 했다. 포세는 항구의 이용과 관련된 세금을 가리키는 뜻인데, 1861년 11월 4일의 간찰(A006_01_A00154_001)에서 포전 즉, 바닷가 밭이 호해정의 일로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포전의 세금을 말할 수도 있지만 단언하기는 어렵다. 1862년 6월 22일의 간찰(A006_01_A00172_001)에서는 내호 즉, 경포대 쪽의 피전에 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사의 청탁과 진행 방식 및 유람을 가기 전에 다른 이의 유람기를 읽던 문화적 관행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호해정의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관한 조언이 주를 이룬다. 긴 비와 삼복더위에 괴로운 가운데 상대와 다른 집안의 안부를 묻고 그리움이 깊다는 상투적 문구로 인사말을 삼았다. 자신은 오래된 병으로 고통이 심하고 고향에서의 편지도 막히어 개인적으로 번민이 많으니 이것을 어떻게 형상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이어 지나가는 이의 편에 서신을 보냈는데 이미 보셨을 것이라 하고, 호해정 앞의 포세를 나누어 주는 일은 이론이 없을 것이니 유생들 사이에서 영문에 나아가 감사의 지시를 따라 입안을 받아 보존하면 영구히 따라 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 전에 영문에서 내린 체문을 꼭 등서해서 보여달라고 하고 강릉 부사가 교체되는 시기인데 혹이라도 남인 중에 일의 진행을 막으려는 이가 있을 수 있으니 새로 부임한 부사에게 미리 아뢰야 하며 부임은 조금 늦을 것으로 보이는데, 실로 오래 기다릴 수는 없으니 감영에 직접 아뢰어도 무방할 것이라고 했다. 이 일을 미리 재중에서 의논하라고도 했다. 끝으로 처음에 써 둔 무릉동의 노정기가 있다면 이번에 보내주면 좋겠다고 했다. 추신으로 자신이 바빠서 다른 집안에 안부를 여쭙지 못하니, 대신 전해주면 고맙겠다는 말을 했다.
원문
烏竹軒 靜坐 執事 權察訪宅
襄陽吏 候狀 謹封
長潦庚熱 俱極惱人 不審此時 靜候衛勝 諸宅俱安否 種種溯仰不任 世下 宿疾添苦 家信久阻 私心悶迫 如何形狀 頃因過便付候 想當入照矣 湖海亭 影堂前 浦稅劃付事 果無岐貳之論 而儒生間 果進往營門 詳承巡相指敎 而成出立案 可保永久遵行耶 幸須詳示之 以破紆鬱 而其前自營門下帖 必爲謄送如何 方値貴府新舊交遞之時 或有午人中沮戲者 則似自齋中 呈稟於新官 而赴任 必當稍遲 實難遲待矣 直爲呈稟于營門無妨 預以此由議及於齋中爲望 武陵洞路程記 始有錄置者 今便送之 似好矣 餘揮汗艱草 姑不備 狀儀
壬戌七月十二日 世下 宋正熈 拜
病且忙擾 不得修候於諸宅 可悵且歎 此意傳告 如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