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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70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3년 송정희 간찰 / 宋正熙 簡札
- ㆍ발급자
-
송정희(宋正熙, 1802~1881)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오죽헌(烏竹軒)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3년 1월 1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癸亥正月十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9.8 × 43.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63년 1월 19일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오죽헌 청풍당에 쓴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63년 1월 19일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오죽헌 청풍당에 쓴 간찰이다. 송정희의 자는 문오(文吾), 본관은 은진(恩津), 송계근(宋啓根)의 아들이며 송계락(宋啓樂)에게 출계(出系)되었다. 송시열과 함께 양송으로 불리는 송준길(宋浚吉, 1606 ~ 1672)의 7대손이다. 송준길은 노론과 소론의 붕당 이전에 사망했으나 그의 후인들이 노론을 형성했고, 이로 인해 노론의 색채가 짙은 강릉지역의 유력 문중들과 대대로 교류가 있어왔다. 송정희는 1861년부터 1863년까지 양양부사(襄陽府使)로 재직했고, 직후 나주목사(羅州牧使)로 이임했다. 1863년 1월 4일의 간찰(A006_01_A00147_001)에서는 17~8일 사이에 관리를 보내 화본 세 건을 모사해 오도록 하겠다는 말이 있고, 이 간찰을 쓰기 3일 전인 1863년 1월 16일의 간찰에서는 화본을 베껴오게 하기 위해 관리를 보낸다는 말이 있다. 오두(五斗)는 녹봉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이 녹봉 때문에 양양부사를 그만두지 못하여 이런 상황에 처했다는 뜻이다. 간찰의 본문에서는 단지 일상의 안부를 전할 뿐이고 핵심은 추신에 있다.
추신에서 상대의 삼종씨가 와서 화본 2~3장을 모사해달라고 부탁한 일과 관련해서 경포대에서 모사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해에 간찰 두 건을 이사람 저사람 손을 거쳐서 보냈는데 아마도 부침이 있었을 것이라 하고, 어제 16일에 쓴 간찰을 받고 보니 이미 봤다는 것을 알겠다고 하면서 신년에 무탈하니 어찌 위로되고 축하할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는 것으로 인사말을 삼았다. 이어 자신의 설사가 오래된 것으로 인해 쓸데없이 걱정을 끼쳤는데 지난 간찰을 쓴 뒤로 수일이나 지났으니 이미 차도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양양부사로 쓸쓸히 있는 것에 대해 간단히 소회를 피력한 후, 마침 강릉부의 일을 겸하고 있던 중에 생각지도 못하게 강릉 사람들이 서로 침해하는 일을 다뤄야 하는데, 이것이 결국 녹봉을 탐해서 이 자리에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일단 글을 맺었다. 추신으로 수일 전에 상대의 삼종씨가 와서 화본 2~3장을 모사해달라고 부탁해서 이미 관리 한 명을 보냈는데 어느 곳에서 모사하는지 모르겠지만 경포대라면 직접 경포대에 올라 그 과정을 상세히 살핀 후에야 흠결의 탄식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런 연유를 그대의 삼종씨에게 전했는데 그대의 뜻은 어떠한지 물었다. 바빠서 간찰을 따로 쓰지 못하고 이처럼 어지럽게 되었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원문
烏竹軒 靜座執史 權察訪宅
襄陽宰 謝候書
歲前 付候二度於轉便 而慮或浮沈矣 昨承旣望出惠復 旣認卽爲登照 且審新元 靜候萬祉 豈勝區區慰賀 弟泄症之彌留 爲之貢念 信後日多 已臻差復否 世下 孤寄海隅 遽當獻發之會 百感弸結 無以爲懷 鄕思轉益難堪 若將生病 都不如浩然賦歸 而尙此蹲停 徒切素餐之愧 而適當貴府兼任 忽遭岐豐面民所侵凌 誠是意外矣 莫非五斗之累 柰何柰何 餘因過便 忙草 姑不備謝儀 日前 令三從氏之枉顧也 以畫本兩三張 摹寫事面托 而已起送一吏矣 未知模畵於何處 而至於鏡浦臺 則躬往臺上 詳審圖出然後 可無欠闕之歎 幸以此由 轉懇於令三從氏前 如何如何 忙未各幅 有此溷煩耳
癸亥正月十九日 世下 宋正熈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