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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송수인 간찰(宋壽仁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68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송수인 간찰 / 宋壽仁 簡札
- ㆍ발급자
-
송수인(宋壽仁)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교정(權敎正, 1807~1865)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6.3 × 48.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미상년 송수인(宋壽仁)이 서신을 받은 당일에 권교정(權敎正, 1807~1865)에게 보내는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미상년 송수인(宋壽仁)이 서신을 받은 당일에 권교정(權敎正, 1807~1865)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송수인은 약력을 찾을 수 없으나, 단지 『매산집(梅山集)』에 홍직필(洪直弼)이 1849년 화서(華西) 홍광일(洪光一)의 행장을 쓰면서 그의 첫째 사위라고 언급한 일이 있다. 편지의 수신자는 시대적으로 보면 권교정(權敎正, 1807~1865)으로 여겨진다. 권교정의 자는 춘옹(春翁)이고 호는 후율(後栗)이다. 청풍당 소장 송수인의 간찰 중에는 시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고, 같은 시기 강릉에서 활발히 활동한 심능규와 관련된 이야기도 적지 않다. 다만, 송수인은 대부분의 간찰에서 일시를 기록하지 않은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추후 자료를 비교 검토하면 일시를 비정할 수 있을 것이다. 호정(湖亭)은 호해정을 경대(鏡臺)는 경포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경포호와 관련된 주요 누정으로 경포대, 해운정, 호해정을 들 수 있는데 이곳은 강릉 사족들이 시회를 가진 공간이기도 했다. 태강지계(太康之戒)는 하나라의 태강(太康)이, 안일에 빠지지 말라는 우 임금의 교훈을 생각지 아니하고 낙수(洛水) 밖으로 사냥을 나가 10순(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유궁(有窮)의 임금인 예(羿)가 하북에서 태강을 막아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폐위시켜 버린 사건에서 연유한 말이다. 오죽헌의 권교정과 송수인 그리고 심능규 등 19세기 중반 강릉을 대표하는 사족 사이의 친교를 보여주는 자료다.
호해정과 경포대에서의 모임을 회상하고 두 편의 시를 보내면서 감회를 피력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호해정에서의 시회와 경포대에서의 술자리는 참으로 쉽지 않은 일로 이처럼 빼어난 경험을 한 것이야 말로 동쪽으로 노닐러 온 본의가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여관에 돌아가서는 이전처럼 지냈으나 시인은 태강의 교훈을 염두에 두지 않는 법이라 자신이 다시 노닐러 가려는 뜻이 점점 절실하니 이것이야말로 인정상 매양 그런 것이지, 객이라서 자신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고 했다. 이어 상투적인 안부 인사를 한 후 지난번 경포대의 모임에서 시를 짓기로 했는데 시를 다 지었는지 묻고 다 지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 이어 자신은 여전하여 달리 받들어 올릴 것이 없다고 한 후, 지난번 모임에서 바쁘다 하고 먼저 돌아와서 슬픔이 있었기 때문에 전날의 운을 따서 두 편의 시를 짓고 못난 줄 알지만 보내드린다고 했다. 또 오봉서원의 비운을 딴 것은 앞뒤의 시와 견줄 것은 아니니 본 후에는 곧 단지 덮는 데나 쓰라고 하였다. 이어 상투적 맺음말을 쓰면서 글을 마쳤다.
원문
后栗 集史
湖亭韻會 鏡臺觴集 實是不易 得之勝事 可償東遊之本意 而歸坐旅館 依樣岑寂 詩人太康之戒莫之念 坡翁復遊之思 轉益切 此固人情之所同然耶 無乃客懷之使獨爾耶 恪詢日來 靜候震艮 連衛萬旺 兩隣老人 亦俱康毖 旋庸擎溯 不任區區 向日臺集 想發詩令 而果有成軸者否 手草前軸謄示 甚望甚望 記下 客狀帶昨 餘何足奉溷 頃者 被忙先歸 嫌悵交摯 故復用前韻 各賦二篇 忘拙
呈 似以供一粲 幸須輪照 共和寄慰 寂莫之懷 如何 五峯碑韻 和呈而不足厠於傳後之軸 覽卽覆瓿焉 何當更展 餘留不備禮 卽記下 壽仁 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