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66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1년 송정희 간찰 / 宋正熙 簡札
- ㆍ발급자
-
송정희(宋正熙, 1802~1881)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오죽헌(烏竹軒)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1년 10월 2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辛酉十月卄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7 × 44.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61년 10월 29일에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오죽헌에 쓴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61년 10월 29일에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오죽헌에 쓴 간찰이다. 송정희는 송시열과 함께 양송으로 불리는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7대손이다. 송준길은 노론과 소론의 붕당 이전에 사망했으나 그의 후인들이 노론을 형성했고, 이로 인해 노론의 색채가 짙은 강릉지역의 유력 문중 특히, 안동권씨 집안인 오죽헌과 대대로 교류가 있었다. 송정희는 1861년부터 1863년까지 양양부사(襄陽府使)로 재직했고, 직후 나주목사(羅州牧使)로 이임했다. 별지에서 말하는 청학동은 현재의 강릉시 연곡면의 지역으로 소금강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말하는 호해정의 일은 1862년 12월 28일의 간찰(A006_01_A00143)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송정희가 양양부사로 있는 중에 송사가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시대의 송사는 몇해에 걸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1861년 11월 4일의 간찰(A006_01_A00164_001)에서 송담서원에 잘 안치된 것이 다행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간찰에서 말한 대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오죽헌에서 송담서원으로 자신이 빌려 보았던 병풍과 족자를, 오죽헌에서 송담서원으로 옮기는 일에 관한 것과 윤의 시와 허목의 퇴조비를 등사하게 해달라는 청을 하고, 호해정의 일에 관해 답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제 저녁에 한 강릉 관리 편으로 상대의 서신을 받고 크게 위로가 되었으며, 근래에 기거는 어떠하신지 묻고 그리움을 표하고 자신은 여전히 못난 상태로 있다는 것으로 머리말을 삼았다. 일전에 보내드린 병풍 하나와 족자 넷 그리고 상자를 댁에서 송담서원의 재실로 옮겼으니 좋은 일이라 하고, 처음 그것들을 받들어 올 때 담당했던 관리와 노예가 있었는데, 이번에 돌려 드릴 때는 옮겨가는 이의 편에 보내드렸으니 일이 매우 편안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에 한 명의 관리와 노예 일인을 보내 송담서원에 보내는 방책으로 삼으려 하니 바라건대 굽어 헤아려 달라 하고, 윤의 시는 아직 구법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겠으므로 베껴 오려 하는데, 윤의 글을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고향의 벗들 중 전서에 예서에 밝은 몇이 허목의 퇴조비문을 얻어보려 하는데 그들의 부탁이 참으로 정성스러워 이번에 강릉의 관리를 시켜 베껴 오도록 했다고 했다. 윤의 시와 퇴조비를 베껴 오는 것에 관해 혹 귀향 사족 들의 노여움은 없었는지, 없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호해정의 일은 자신이 한미한 인물이므로 반드시 이룬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삼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 도모할 것이라고 했다. 오는 열흘 안에 고향에 돌아가려 하니 이 서신 이후로는 연락이 끊길 것이므로 마음이 암담하다고 하고, 서식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으로 맺음말을 삼았다. 이어, 별지에서 청학동 식당암에 율곡 선생의 제명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지 알려달라고 하고, 오봉서원의 비문은 돌려 드린다고 했다.
원문
北坪靜座執事 謹封
再昨夕 因江陵吏便 獲拜惠復 尙庸慰荷 恪詢間者 靜候萬衛 旋切溯昻 世下 一依憒劣樣子而已 日前所送置一屛四簇幷樻子 自貴中 傳致於松潭院齋 非不便好 而始焉奉來之時 專送吏隷 今也還呈之際 因轉便付納 事體之未安 極矣 玆起送一吏一隷 以爲轉往松院之地 幸望俯諒 而出給屛簇 使渠輩奉納 如何如何 五峰審院錄中 後學二字 當去與否 想當俯托於齋中 而尹詩 則緣忙乍閱 未知句法之果如何 故欲謄來 蓋以尹之文字 尙未覩一篇故也 且懷鄕數三士友有工於篆隷者 要得退潮碑 其托甚勤 故日前果使江陵吏 印出以來矣 此兩件事 那得免貴鄕士論之峻
發耶 仰呵仰呵 湖亭事 謹當隨機圖之而自顧人微言輕 何敢望必成耶 來旬間 亟擬還家 從此音信
將阻闃矣 臨紙 祗自悵黯 餘不備禮
辛酉十月卄九日 世下 宋正熈 拜
劣肉五斤 忘略伴呈耳
[別紙]
今聞 靑鶴洞食堂巖 有栗谷先生題名云 果然否 幸須詳敎之也 五峯碑文 還呈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