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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60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94년 민병승 간찰 / 閔丙承 簡札
- ㆍ발급자
-
민병승(閔丙承, 1866~)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94년 1월 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午元月初五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5.2 × 42.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94년 1월 5일 민병승(閔丙承, 1866~?)이 쓴 위장(慰狀)의 형식을 일부 갖춘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94년 1월 5일 민병승(閔丙承, 1866~?)이 쓴 위장(慰狀)의 형식을 일부 갖춘 간찰이다. 발급자의 성이 적기 되어 있지 않지만, A006_01_A00499_001과 필체가 같은 것으로 보아 발급자는 민병승으로 판단된다. 민병승은 1885년 정시 병과 1위로 급제했으며, 부친은 임오군란이 있었을 때 명성왕후에게 피신처를 제공해서, 출세의 길을 열었고 이후 개화파와 대립했던 민응식(閔應植, 1844~?)이다. 민병승은 1884년(고종 21) 1월 외국어학교 부교관(副敎官), 1885년(고종 22) 탁지부주사를 지냈으며, 당시 실시된 과거에 병과(兵科)로 문과 급제하였다. 1886년(고종 23) 이조정랑(吏曹正郞)‧시강원 겸문학‧시강원 겸필선‧승정원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887년(고종 24) 이후 내무부참의(內務部參議)‧이조참판‧규장각직제학 등을 지냈다. 1897년(광무 1) 이후 중추원1등의관‧궁내부특진관 칙임3등관 등을 역임하였다. 먼저 격식을 줄인다고 했는데 위장의 형태를 따른 것이다. 조문에 대해 감사하는 편지를 받고 나서 쓴 답장으로, 일상의 안부를 전하고 있을 뿐 특별한 내용은 없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중에 서신이 와서 상중의 안부에 무탈함을 알게 되었다 하고, 절기가 변하는 때를 맞이하여 부모님을 잃은 슬픔이 새로울 것이라고 위로하고, 혹이라도 몸을 상하지 않았는지 물은 후 그리운 마음이 절실하다는 말로 인사말을 삼았다. 이어 자신은 공무로 바쁘고 매일같이 복잡하여 특히 번민이 심하다고 했다. 보내주신 해산물은 수대로 받았으니 매우 감사한데 이처럼 힘써서 보내줄 필요는 없었다고 하고 깊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머지 할 말은 모두 미뤄둔다 하고 위장의 서식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으로 맺음말을 삼았다.
원문
省式 久阻瞻誦之際 委䟽來到 仍審哀候 連爲支安 當此節序之變 隕廓之懷 想復如新矣 毋或受損之憂否 仰漽區區 且慰之至 記下 公擾頻仍 日昨劇惱 殊悶悶耳 俯施海錯依受 深領 而以若窮蔀事力 何必如是傾及耶 銘謝之耳 餘留都却 不備謝䟽禮
甲午元月初五日 記下 丙承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