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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58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3년 송정희 간찰 / 宋正熙 簡札
- ㆍ발급자
-
송정희(宋正熙, 1802~1881)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청풍당(淸風堂)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3년 2월 3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癸亥二月三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2.7 × 45.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63년 2월 3일에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청풍당에 쓴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63년 2월 3일에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청풍당에 쓴 간찰이다. 송정희의 자는 문오(文吾), 본관은 은진(恩津), 송계근(宋啓根)의 아들이며 송계락(宋啓樂)에게 출계(出系)되었다. 송시열과 함께 양송으로 불리는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7대손이다. 송준길은 노론과 소론의 붕당 이전에 사망했으나 그의 후인들이 노론을 형성했고, 이로 인해 노론의 색채가 짙은 강릉지역의 유력 문중들과 대대로 교류가 있어왔다. 송정희는 1861년부터 1863년까지 양양부사(襄陽府使)로 재직했고, 직후 나주목사(羅州牧使)로 이임했다. 기풍(岐豐)은 주(周) 문왕과 무왕의 도읍지로 강릉이 관동지역의 수도로 인식되기도 한데서 부쳐진 이름이다. 위래(委來)는 일부러 찾아 왔다는 뜻이다. 1863년 1월 14일에 쓴 간찰(A006_01_A00147_001)에서, 17~8일 사이에 관리를 보내 화본 세 건을 베껴오도록 하겠다고 했고, 1월 16일의 간찰(A006_01_A00156_001)에서는 화본을 모사하는 것과 관련해서 관리 한 명을 보낸다고 했다. 간찰별지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1863년 1월 19일의 간찰(A006_01_A00170_001)에서는 강릉의 사람들이 서로를 침해하는 일이 있다 하고 있는 것에 이어서, 1863년 2월 17일의 간찰(A006_01_A00178_001)에서 말하는 강릉에서 있었던 불법적 도축과 관련된 신고처리에 관한 내용과 관련 있어 보이는데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화본의 모사가 잘 이뤄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 결에 송담서원에서 한 폭을 더 모사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낸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 22일, 1월 16일에 화본의 모사를 위해 강릉에 보냈던 관리가 돌아오는 길에 가져온 간찰을 펼쳐보았는데, 근래 봄기운이 약간 있는 중에 무탈하다고 하시니 위로가 된다는 것으로 인사말을 삼았다. 이어 근래 돌림감기에 걸려 며칠간 고생했고 집에서는 서신이 오랫동안 오지 않아 근심이니, 미칠 지경이라고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화본의 모사가 잘 된 것은 실로 축하할 만하니 어찌 감격스럽고 다행스러움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라 하고, 송담서원에서 한 폭을 더 모사하는 것도 이 결에 했으면 한다고 하면서, 어찌 전의 것과 다른 것이라고 꺼려하겠는가라고 했다. 이어 지나가는 사람 편에 부치는 서신으로 잠시 글을 쓰는 상황이라고 서식을 갖추지 못한다고 것으로 맺음 말을 삼았다. 추신에서는 강릉의 양반과 일반 백성들이 와서 자신들의 잘못을 아뢰었으니 웃을만하다고 했다.
원문
竹軒靜座執事 權察訪宅
襄陽吏 候書 謹封
去念二 因鄙邑吏之回 獲拜惠翰 至今披慰 近日薄有春意 恪詢此時 靜候萬護 仰溯旋深 世下 近添輪感 屢日呌苦 家信久阻 病懷果難堪遣 秪自悶鬱 欲狂而已 畫本之善就 實荷勤念 豈勝感幸 松院之并寫於一幅 亦可以寓慕矣 何敢以異於前本爲嫌耶 餘適因便暫草 姑不備書禮
癸亥二月三日 世下 宋正熈 拜
岐豐班民 向者委來 自服其罪 還可笑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