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48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2년 송정희 간찰 / 宋正熙 簡札
- ㆍ발급자
-
송정희(宋正熙, 1802~1881)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2년 12월 2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戌十二月卄五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4.4 × 47.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62년 12월 25일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오죽헌 안동권씨 일가의 미상인 혹은 권계학 집안의 구성원에게 쓴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62년 12월 25일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오죽헌 안동권씨 일가의 미상인 혹은 권계학 집안의 구성원에게 쓴 간찰이다. 송정희의 자는 문오(文吾), 본관은 은진(恩津), 송계근(宋啓根)의 아들이며 송계락(宋啓樂)에게 출계(出系)되었다. 1834년(순조 34)의 식년시 진사 3등 42위로 입격한 뒤 음직으로 최말단 관직인 참봉직을 제수받았다. 홍산현감‧공조좌랑‧보은군수‧양양부사‧나주목사‧사복시정‧공조참판을 역임했다. 1861년부터 1863년까지 양양부사(襄陽府使)로 재직했고, 나주목사(羅州牧使)로 이임했다. 당시에 송정희는 환갑을 맞이했다. 글에서 고령으로 인한 어려움이 표현되어 있다. 수후(修候)는 안부를 묻는다는 즉, 편지를 쓴다는 뜻이다.
단순히 안부를 묻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오랜 세월 격조해서 마치 서로를 잊은 듯 하지만 마음의 그리움은 더욱 심하니 이 마음이 어찌 조금이라도 느슨해지겠는가 하고 연말의 남은 기간에 체후는 어떠한지 또 다른 분들은 모두 편안하신지 묻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이어 자신은 선영에서 환갑을 보내기 위해 윤달에 집에 돌아갔다가 지난 달 보름 경에 양양으로 돌아왔다고 한 후, 여독에 병이 겹쳤는데 형세 상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돌아온 후 번잡한 용무를 처리하느라 기한 후에야 봉환할 수 있다고 한 후, 나날이 머리가 탁해지고 약간 있는 노예도 겨를이 없어서 서신을 보내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한스럽다고 했다. (광여(曠餘)는 비워둔 후 즉, 돌아온 후를 가리키는 말이고, 용무(冗務)는 번잡한 사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어서 마침 오늘 지나가는 이의 편에 서신을 보내는데, 황망하고 바빠서 잠깐 거칠게 서신을 쓴다고 하면서 글을 맺었다. 편지를 전달하는 이가 바빠서 모든 집안에 안부를 묻지 못하는 바, 내 안부를 전달해달라는 말을 추기했다.
원문
烏竹軒 執事
謹封
積久阻閴 殆若相忘 懷仰耿耿 曷嘗少弛 恪詢殘臘 靜候萬衛 諸宅勻寧否 仰溯種種不任 世下 爲過甲日於先楸下 閏月還家 感舊之懷 尙今弸結 而去月望間 始返衙 路憊添病 勢所使然 而曠餘冗務也 限後捧還也 日輒熏惱 畧干殘隷 亦無暇隙 尙不得修候 極爲悵嘆萬萬 今適因過便 忙擾暫草 歲除隔無多日 惟冀餞迓增祉 餘不備狀禮
壬戌十二月卄五日 世下 正熈 拜
便極悤忙 無由修候於諸宅 此意 或可傳達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