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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45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1년 송정희 간찰 / 宋正熙 簡札
- ㆍ발급자
-
송정희(宋正熙, 1802~1881)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1년 10월 2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辛酉十月卄九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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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26.8 × 45.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61년 10월 29일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권계학(權啓學, 1716~1778)의 후손에게 쓴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61년 10월 29일 송정희(宋正熙, 1802~1881)가 권계학(權啓學, 1716~1778)의 후손에게 쓴 간찰이다. 권찰방댁[權察訪宅]이라는 표현은 수신자의 선조인 권계학이 현재의 충주지역에 있었던 연원역 찰방을 지낸 일에서 연유한다. 송정희의 자는 문오(文吾)이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부친은 송계락(宋啓樂)이고 생부는 송계근(宋啓根)이다. 1834년(순조 34) 의 식년시 진사 3등 42위로 입격한 뒤 음직으로 최말단 관직인 참봉직을 제수받았다. 영릉참봉(寧陵參奉)‧홍산현감(鴻山縣監)‧공조좌랑‧보은군수‧양양부사‧나주목사‧사복시정‧공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송정희는 1861년 4월 23일에 양양부사(襄陽府使)를 제수받았고 1863년도에 나주목사(羅州牧使)로 전직했다. 세하(世下)는 가문 사이에 대대로 교류가 있던 집안의 인물들 사이에서 자신을 이르는 말이다. 당시의 양양은 현재의 속초를 포함하고 있었다. 양양부사로 올 때 이미 환갑에 가까운 나이였고, 1862년 12월 25일 의 간찰(A006_01_A00148)에서는 1862년 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고향에서 환갑을 보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간찰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예를 벗어난 듯한 자유로움은 고령의 나이라는 점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뒤에 추기로 보내는 물목(物目)을 간단히 적어 두었다. 간찰 뒷부분의 추기에는 위와 같이 선물로 보내는 물목이나 따로 은근히 해야 할 말을 적는 일이 많았다. 보내는 물목을 따로 적는 문서를 단자(單子)라 하고, 단자의 내용을 확인해주는 문서를 자문(尺文)이라고 한다.
양양부사로 부임한 해 겨울에 권계학의 후손에게 보낸 것으로, 선물을 보내면서 부탁을 하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먼저 지난 번에 만났을 때 일이 바빠서 편안히 보지 못하고 돌아와서 한탄스럽다고 적고, 겨울철에 잘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하고 그리움이 지극하다고 했다. 이어 자신은 여전한데 이번에 송원(松院)의 병풍과 족자 중 상대의 댁에서 보내는 것 중 부칠 것이 있으면 돌아오는 편에 보내라고 했다. 또한 관리와 노비를 시켜서 물건을 올리도록 했으며 따로 베껴 올 것이 있어서, 상대 육촌의 아들에게 서신으로 부탁했다 하면서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열흘 사이에 고향에 돌아가려 하는 바 오랫동안 격조할 것이라 미리 슬픔을 느낀다고 하고 예를 다 갖추지 못한다는 등의 상투적인 인사말로 글을 맺고 있다.
원문
烏竹軒執事 權察訪宅
謹封
向旣値暮 且緣行忙 未克穩晤而歸 至今悵嘆 卽此陰寒 靜候萬護 仰溯不任 世下 一依前狀而已 松院屛簇之自貴中轉送 有若付之順歸便 且揆以有始有終之道 更當使吏隷奉納 故玆專送一吏一隷 而裁書於齋中耳 且有畧干謄來者 方書托于令再從侄許 而貽煩甚嘆 來旬間 丕擬還鄕 將作隔歲之阻 預切悵黯 餘姑不備書禮
辛酉十月卄九日 世下 宋正熈 拜
劣肉三斤 忘畧伴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