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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해제
1767년 12월 26일 권진응(權震應, 1711~1775)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보낸 간찰이다. 권계학은 1765~1767년에 현재의 충주시 연수동 지역에 있었던 연원역의 찰방(察訪)으로 있었다. A006_01_A00131_001은 1767년 2월 29일에 권진응이 권계학에서 쓴 것으로 내용상 연원찰방직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A006_01_A00133_001은 1767년 11월 9일의 간찰로 언제 강릉으로 돌아가는지 묻고 있다. 그 전에 체직되었음을 알 수 있다. A006_01_A00134_001 자료인 같은 해 11월 19일의 간찰에서는 강릉에서 보내준 방어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있으므로 보아, 권계학은 1767년 11월 6일 이후에 충주를 떠나 19일 이전에 이미 강릉에 도착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간찰을 받았을 때는 이미 연원찰방직을 떠난 상태였을 것이다. 기실은 서류를 담당하던 직을 이르는 말로, 간찰에서 종종 보이는 집사 등과 같은 의미의 표현이다. 권찰방 기실(權察訪 記室)은 상대의 전직을 호칭으로 삼은 것이다. 동고(冬考)는 겨울의 인사고과를 이르는 말이다. A006_01_A00136_001와 A006_01_A00141_001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권계학이 1767년에 체직된 일은 인사고과와 관련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동고 등 인사고과에 관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으로 보인다. 생식(省式)이라는 짧은 인사성 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인사말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글투를 통해 발급자의 격정을 드러냈다.
번거로운 의례적 말을 생략한다고 하곤 바로 겨울의 고과기록인 동고를 보니 그 사람이 외롭고 약한 사람을 속여 자신의 책임을 면하려고 꾸며내는 꼴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하고 있는데 배경이 불분명하지만 연원찰방직에 대한 고과를 메긴 이가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체직에 이르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만약 달관하여 사태에 따라 변한다면 밖에서 이르는 영욕은 다만 허공의 뜬 구름과 같을 뿐이냐고 한 후, 자신은 하루아침에 즐거움을 잃어버렸으니 그 서운하고 섭섭함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이어 이 혹한에 강릉에서의 안부를 물으면서 강릉 경호의 자연 속에서 있는 것이 허리가 꺾이면서 야유를 받는 곳에 있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라 하여 권계학이 체직되어 강릉으로 돌아간 일을 다시 위로하고, 보고 싶은 마음이 전보다 훨씬 심하다고 했다. 다음으로 자신은 여전히 기력이 떨어진 상태로 활발히 활동하기를 기약하기 어려운데 근래에 또 눈병[阿睹之病, 阿睹는 눈을 가리키는 말이다]이 생겨 수건으로 머리를 감고 누워있어서 글자를 봐야 하는 일은 미뤄두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간찰별지에서는 모종의 부탁한 일에 대해 어찌 되었는지 묻고 있다. 먼저 사또에게 도착할 일시를 말해두었으니 이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만약 이미 일을 마친 상태라서 합칠 수 있는 건수라면 마땅히 운송해서 보내올 길을 삼아야 겠으니 그 여부를 보여달라고 청했다. 부연하여 말하기를 반드시 좋은 품질의 것이어야 운송해 올 수 있음을 헤아려 달라고 했다. 아사(亞使, 조선 시대 각 도의 관찰사를 보좌하면서 행정 업무를 총괄한 경력(經歷, 종사품)과 도사(都事, 종오품)를 가리키는 말)가 마침 서로 친한 관계라 권계학의 아들을 복시에서 반드시 구제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고 하고 아들이 전적을 맡는 일도 전달했으나 효과가 있을 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권계학의 아들 중 권한옥(權漢玉, 1748~ )은 1777년 식년시에서 진사 3등 3위 즉, 전체 백명 중 33 등으로 입격했다. A006_01_A00142는 권진응(權震應, 1711~1775)의 아들인 권중정(權中正)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의 아들인 권한위(權漢偉, 1743~ )에게 보낸 간찰로, 과거시험의 합격을 축하하고 있다. 권한위는 1768년(영조 44년) 식년시에 병과 19위 전체 29위로 급제했다. 따라서 이곳에서 말하는 아들은 권한위를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원문
權察訪 記室 呈納
黃江 候狀 省式謹封
省式 卽見冬考 其欺人孤弱 把作自家塞責之奇貨者 不忍正視也 竊惟達觀順變 外至榮辱 奚啻太空之浮雲 而顧此隣比 源源之樂 一朝失之 悵缺可勝言 卽此窮臘 起居如何 鏡湖烟月 魚鳥舊盟 反有勝於折腰揶揄之場否 區區瞻結 却倍前日矣 震應 一味沈頓 起動無期 近又添得阿睹之病 飾巾伏枕 不辨晝夜 看字舊業 亦且排却 蟲臂鼠肝 只當一應於化翁而已 奈何奈何 只冀餞納增祉 以副區區之望 伏惟諒照 謹候狀上
丁亥臘月卄六日 宗末服人 震應 頓
其事果已經紀否 本倅許 來時已言及 此則無慮 如已畢役 而爲可合之件 則當爲運來之道 幸示破其與否 如何如何 必爲極品 然後可以運來 須諒之 亞使適相親 故另及令胤之實才 使之必濟於覆試 以此言及 三場 必令善製以呈 如何 令胤典籍事 不無言及於銓地事 未知畢竟有效否也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