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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33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7년 권진응 간찰 / 權震應 簡札
- ㆍ발급자
-
권진응(權震應, 1711~1775,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權啓學, 1716~1778,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7년 11월 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亥至月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4.5 × 4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767년 11월 9일 권진응(權震應, 1711~1775)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보낸 간찰이다. 권계학은 1765~1767년에 현재의 충주시 연수동 지역에 있었던 연원역의 찰방(察訪)으로 있었다. 이런 이유로 연원우헌(連原郵軒) 즉, 연원우역(連原郵驛)이라고 수신지를 적었다. 1767년 연원찰방을 끝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해서 1774년(영조 50)에 오죽헌 근방에 청풍당(淸風堂)을 지은 뒤 여생을 보냈다. 1767년 연원찰방에서 체직된 직후 아직 강릉으로 돌아오지 않은 시기에 쓰여진 간찰이다. 아자(兒子)는 권진응의 첫째 아들인 권중정(權中正)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자료 A006_01_A00322_001은 권진응의 아들인 권중정이 권계학에게 보낸 것으로, 권진응의 아들인 권중정과 권계학 사이에도 서신 왕래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병으로 조리하고 있는 상대를 이르는 간찰용어로 조후(調候)가 있다. 이곳에서는 정후(政候)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정후 혹은 정리(政履)는 관직을 맡고 있는 상대의 안부를 의미한다.
근래에 괴질이 들어 집안 사람들이 모두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근래 체후는 어떤지 묻고 근래 괴질이 유행해서 사망이 속출하고 있으니 자신이 있는 황강 지역 즉, 현대의 제천시 한수면 지역도 마찬가지라는 말로 인사말을 급히 적고 있다. 장동(長洞)에서 온 편지는 받아 보았다라고 하고 있다. (A006_01_A00141_001에도 장동의 벗 심이라는 인물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장동은 특정한 지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로서는 특정하기 어렵다. 참고로 1768년 4월 6일에 보낸 간찰 A006_01_A00331_001에서도 병종(病宗)이라고 해서 여전히 병을 앓고 있다고 하고 있다.) 본래 아들인 권중정이 간찰을 써야 하지만, 괴질로 밤새 고생하였으므로 자신이 대신 쓴다는 말이 들어 있다. 간찰 뒤에 추기로 영동 쪽으로 가는 일은 언제 출발할거냐 하여 언제 강릉으로 귀향할 것인지 묻고 있다.
원문
連原郵軒 入納
黃江 書狀
伏惟日間 政候若何 近來一種怪疾 遍行京外 死亡相續 令人驚怕 未知那中獨能不然耶 震 老病之故 最中其毒 委頓多日 喘喘欲死 而一家上下 一時痛臥 殆於樵汲無人 此何運氣 誠可異也 長洞書謹領 而兒子方昏痛 故謹此替謝爾 萬萬憊眩 不宣狀式
丁亥至月九日 宗末 震應 頓
嶺東行駕 將發於何間耶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