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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131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7년 권진응 간찰 / 權震應 簡札
- ㆍ발급자
-
권진응(權震應, 1711~1775)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권계학(權啓學, 1716~1778,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7년 2월 2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亥二月卄九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3 × 37.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767년(정해년) 2월 29일 권진응(權震應, 1711~1775)이 권계학(權啓學, 1716~1778)에게 보낸 간찰이다. 발급자와 수취자 모두 안동권씨로 같은 집안이므로, 종친간에 사용하는 종말(宗末)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권진응은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증손자다. 권상하는 양송으로 불리는 송준길과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문인으로, 기호학파의 학통을 계승하면서 추후 호락논변으로 전개된 인물성론(人物性論)을 발전시켰다. 권진응은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의 문인으로 과거 시험을 보지 않았으나, 의정부 대신들과 이조의 당상관들이 모여 인재를 추천하는 초선으로 시강원의 정7품 자의에 임명되었고, 1771년 증조부 권상하를 변호하다가 3월 14일 제주도 대정현으로 유배되었다. 이 간찰은 그가 제주도로 유배되기 4년 전에 쓰였다. 수신자 권계학의 호는 죽암(竹巖)인데 죽암유고(竹庵遺稿)는 그의 시문집으로 2023년에 율곡연구원에서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본관은 안동(安東), 부친은 권득형(權得衡)이다. 권계학은 1747년 식년시 병과 13위로 문과에 급제한 뒤, 경양찰방‧전적‧감찰‧예조정랑‧겸춘추‧공조정랑‧병조정랑‧연원찰방을 역임했다. 1767년 연원찰방을 끝으로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해서 1774년(영조 50)에 오죽헌 근방에 청풍당(淸風堂)을 지은 뒤 여생을 보냈다. 1788년(정조 12) 1월 18일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우헌(郵軒)은 우아(郵衙)와 같다. 권계학이 역참을 관리하는 찰방(察訪)으로 있었기 때문에 우헌 즉, 우아가 수신지로 적혀 있다.
길을 떠나는 딸에게 말을 내주기를 청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추기에서는 권진응의 사돈댁에 우환이 있어서 값을 치루면서 자신에게 청한 것이 있는데, 계절에 맞지 않는 것이므로 구할 수 없어 그대로 돌려 보냈으니, 혹 남는 것이 있으면 1.5되를 변통해서 보내주면 사돈에게 생색이 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요컨대 두 개의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결국, 딸이 시댁으로 돌아가는 길에 말을 청하면서 사돈댁에 보낼 물품을 청하는 내용이다. 끝으로 자신에 대해 두터운 마음을 갖고 있다는 점을 믿고 이처럼 자잘한 부탁을 청하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표했다.
원문
連原郵軒 入納
謹封
日間頓有暄意 伏惟政履益勝 仰溯仰溯 宗末 厪如前狀 而湖行將以旬後治發 機俱不逮 殊以爲擾 女兒之行 賴侍健騎 得以治送 感荷何極 餘姑不宣 伏惟下照
丁亥二月卄九 宗末 震應 頓
聞査家有憂患 質侍價送來 而非節之物 無以覓得 不免以價還送 或有用餘一半升 推移送之 則生色大矣 如何如何 敢恃厚眷 謀及此等瑣事 庶可恕諒 而還以爲悚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