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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윤치용 간찰(尹致容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079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0년 윤치용 간찰 / 尹致容 簡札
- ㆍ발급자
-
윤치용(尹致容)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0년 9월 2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庚申 九月 卄五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8 × 4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60년 윤치용이 청풍당 안동권씨 일원에게 발급한 간찰 두 건 중 하나로 두 건이 하나의 피봉에 들어 있다.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하나의 피봉에 두 편의 간찰로 구성되어 있다. 발급자는 모두 윤치용(尹致容, 1798~?)으로 안부를 주고받고 자신의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記下’라고 표현하여 수신자와는 평교간으로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사이로 추정된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기록된 ‘廣判 謝狀’를 통해 발급자는 당시 강릉부사에서 광주판관으로 옮겨 재직 중인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수신자는 ‘江陵 竹軒 權生員 靜座 回納’이라는 기록을 통해 청풍당 안동권씨 문중에 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발급자와 비슷한 연배의 인물로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의 후손인 사죽당(思竹堂) 권박(權樸, 1773~?)의 아랫대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권박은 강릉에 거주하면서 생원시에 입격한 이력이 있으므로 ‘권생원댁’은 이 집안의 일원을 나타낸 말로 추정된다.
경신년(1860) 9월 25일에 윤치용이 발급한 간찰이다. 이슬 맺힌 국화와 서리 내린 단풍을 보자니 상대가 그리운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던 차에 뜻밖에 상대 조카가 찾아와 상대의 편지를 받고 고요히 기거하는 안부가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했다. 자신은 묵은 병이 추위를 당하여 더치고, 백성들이 흉년을 만난 것으로 근심하고 있는 근황을 알렸다. 상대와 호수와 바다에서 풍월을 완상하고 잔술로 서로 따랐던 일이 여전히 남아 꿈속에서도 이따금 그곳으로 달려가는데, 서로 만날 기약이 없어 서운하다고 했다. 추록에는, 여름에 받은 편지에 인편이 없어 답장이 늦었다고 하였다. 발급자 윤치용은 자는 대수(大受), 본관은 해평(海平), 부는 윤경렬(尹慶烈)이다. 1822년 식년시 진사 2등으로 입격하였고, 음직으로 승지‧여주목사‧나주목사‧강릉부사‧광주판관‧영변부사 등을 역임했다. 『강릉부사선생안(江陵府使先生案)』에 따르면 그는 기미년(1859) 봄에 부임하였고, 재임 당시의 치적을 통해 ‘교화로 다스려 이민들이 복종하였고, 정사는 고르고 송사는 간이하였다.[以化爲治 吏民畏服 政平訟簡]’는 감사의 포제(褒題)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 · 『承政院日記』 『江陵府使先生案』 (국립중앙도서관[古2196-1]) 임호민, 「조선조 명문가의 재도약 과정과 향촌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 -강릉거주 안동권씨 청풍당淸風堂 가문을 중심으로-」, 『강원사학』39(강원사학회), 2022
참고자료
원문
江陵 竹軒 權生員 靜座 回納 廣判 謝狀 [着圖書] 省式謹封
露菊霜楓 懷仰罙勤 意外令咸 遠尋山裏 其喜可掬 況又袖致惠墨 承審伊來 靜候淸重 慰仰愜禱 實副願聞 記下 宿疴當寒添苦 民憂値歉多惱 悶憐柰何 湖海風月 盃酒相從 餘戀尙存 安得無夢想之種種遙馳也 奉際無期 每自悵黯而已 餘不備謝例 庚申 九月 卄五日 記下 致容 拜 夏間惠札 失便稽謝 悵歎不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