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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078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1861~1863년) 홍재우 간찰 / 洪在愚 簡札
- ㆍ발급자
-
홍재우(洪在愚)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29.8 × 40.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미상년(1861-1863 사이 추정) 즉일에 홍재우(洪在愚, 1806~?)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미상년(1861-1863 사이 추정) 즉일에 홍재우(洪在愚, 1806~?)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특별한 관계호칭이 없이 그대로 자신의 성명을 직서하여 상대와 평교 정도의 사이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知府 謝狀’이라는 기록을 통해 발급자는 당시 강릉부사로 재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그 우측에 ‘竹軒 集史 回納’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청풍당 안동권씨 문중에 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발급자와 비슷한 연배의 인물로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의 후손인 사죽당(思竹堂) 권박(權樸, 1773~?)의 아랫대일 가능성이 크다.
한 차례 자리를 쓸고 상대와 만났던 일은 남은 영향이 여전하다고 하면서, 자신은 그간 오봉(五峯)과 송담(松潭)으로 다니다가 차례로 오죽헌과 해운정 사이로 거쳐 가 보려고 했었는데, 고을 사무와 신병이 번갈아가며 발생하는 통에 아직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이러던 즈음에 상대의 하인을 통해 편지를 받아서 고요히 기거하는 기체후가 여러모로 좋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다만 풍년 든 세상에 국화주도 익어 가는데 산에 올라 들을 살펴보면 지극히 즐거워 자신도 모르게 부러워져 정신이 쏠려가는 것을 온갖 행정 사무와 형장 등의 일에 매여 사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고 언급하였다. 그런데도 상대의 편지에서 자신을 지나치게 자랑하고 추어준 말이 많았으니 감당하지 못하여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했다. 병이 낫기를 기다려 찾아가겠으나 다시 이곳으로 왕림 해 주시는 것도 기대한다고 했다.
본문에서 언급된 ‘오봉’, ‘송담’, ‘죽(竹, 烏竹軒)’, ‘해(海, 海雲亭)’ 모두 강릉 소재의 지명이고, 특히 “죽‧해의 사이[竹海之間]”는 수신자가 거주하는 곳과 인근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은 승경지를 유람하고 시를 지으며 한가롭게 살고 싶으나 공무에 시달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관료이면서도 문인이었던 한 지방 수령의 일상이나 사고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홍재우는 자는 경연(景淵), 본관은 남양(南陽), 부친은 홍영섭(洪英燮)이다. 1840년(헌종 6) 경자 식년시 진사 1등 3위로 입격하였고, 음직으로 가평군수(加平郡守)‧강릉부사(江陵府使)‧의성현령(義城縣令)‧삼가현감(三嘉縣監) 등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 특히 『강릉부사선생안(江陵府使先生案)』에 따르면 1861년 8월 8일 가평군수에서 이곳으로 부임한 뒤부터 1863년 7월에 의성현령으로 근무지를 옮기기 전까지 강릉부사로 재직하였음이 확인되므로 이 간찰이 발급된 해 역시 이때로 추정 가능하다.
- · 『承政院日記』 『江陵府使先生案』 (국립중앙도서관[古2196-1]) 국토지리정보원,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진한엠앤비, 2015(국토지리정보원 사이트 pdf) 임호민, 「조선조 명문가의 재도약 과정과 향촌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 -강릉거주 안동권씨 청풍당淸風堂 가문을 중심으로-」, 『강원사학』39(강원사학회), 2022
참고자료
원문
一解陳榻 餘響尙留 瞻詠每切 而間作五峯松潭之行 次第將擬轉於竹海之間矣 邑務身恙 迭相纏綿 姑未暇矣 際奴委翰先至 披擎慰浣 殆若更接淸範 矧拜審靜候萬穆 尤所願聞 第我稼旣同 菊釀政熟 登山看坪 至樂陶陶 不覺健羡馳神者 較此埋頭沒鼻於簿書箠楚之間 不啻若三十里故也 卽於敎中多夸獎之辭 是固不敢當 而亦不知何以爲盡 悚愧極矣 容俟病間 當有一進 而更枉之遠嫌 無乃過當耶 深用企仰 何間果欲辦此耶 餘不備謝狀式 卽 洪在愚 拜謝
竹軒 集史 回納 知府 謝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