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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6_01_A00077_001
- ㆍ입수처
- 안동권씨 청풍당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59년 류후조 간찰 / 柳厚祚 簡札
- ㆍ발급자
-
류후조(柳厚祚)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57년 8월 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巳 八月 初六日
- ㆍ형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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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크기: 29.8 × 4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정사년(1857) 8월 6일에 기하(記下) 류후조(柳厚祚, 1798~1876)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정사년(1857) 8월 6일에 기하(記下) 류후조(柳厚祚, 1798~1876)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記下’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으로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사이로 추정된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本倅 拜候狀’이라고 기록하여 발급자는 당시 강릉부사로 재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그 우측에 ‘竹軒 靜座 執事 入納’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청풍당 안동권씨 문중에 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발급자와 비슷한 연배의 인물로 죽암(竹巖) 권계학(權啓學, 1716~1788)의 후손인 사죽당(思竹堂) 권박(權樸, 1773~?)의 아랫대일 가능성이 크다.
가을이 점차 깊어지니 격조한 회포가 더욱 간절해진다고 하면서, 근래에 고요히 기거하는 상대의 안부와 상대 아들의 안부 및 과행(科行)은 언제 출발하는 지 등을 물었다. 자신은 그간 척주(陟州, 삼척) 현산(峴山)에 갔다 와서 여독으로 쓰러져 지낸다고 하였다. 감영에서 월정사(月精寺) 사고(史庫)에 봉안된 보서(寶書)들을 순선(旬宣)할 날짜가 정해졌고, 어제 이미 노문(路文)이 관부에 내려왔다고 하면서, 도착하는 날은 15일이고, 경호(鏡湖)를 유람하는 것은 또한 6일 있어 일이 매우 군색하니 고민된다고 했다. 노문의 내용에 오죽헌(烏竹軒)도 들어가 있어서 혹여 지나다 상대측에 들릴 수 있으므로 이렇게 통지하니 양해 해 달라고 했다.
본문에서 언급된 ‘사고’는 강원도 평창군 월정사 소재의 오대산 사고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당시 강원도 관찰사가 해당 사고뿐만 아니라 강릉 일대를 다니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문을 발행 한 것으로 보면 중앙에서 포쇄관이 파견되어 관찰사가 이들을 대동하여 다녔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당시 사고의 관리와 관련 절차, 이에 대한 지방관의 대응 등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류후조는 자는 재가(載可), 호는 낙파(洛坡)‧매산(梅山)‧영매(嶺梅), 본관은 풍산(豊山), 부친은 강고(江皐) 류심춘(柳尋春), 아들은 계당(溪堂) 류주목(柳疇睦)이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아들 수암(修巖) 류진(柳袗)의 후손으로 상주(尙州)에 거주하였다. 1837년(헌종 3) 정유 식년시 진사 3등 65위로 입격하고, 1858년(철종 9) 무오 정시 병과 1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강릉부사‧승지‧대사간‧이조판서‧공조판서‧우의정‧좌의정 등을 역임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특히 『강릉부사선생안(江陵府使先生案)』에 따르면 그는 1855년부터 1858년까지 강릉부사에 재직했음을 알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江陵府使先生案』 (국립중앙도서관[古2196-1]) 임호민, 「조선조 명문가의 재도약 과정과 향촌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고찰 -강릉거주 안동권씨 청풍당淸風堂 가문을 중심으로-」, 『강원사학』39(강원사학회), 2022
참고자료
원문
秋意漸高 阻仰益勤 伏詢比間 靜中體事 一例萬重 令允侍奉一衛 科行何間戒程耶 倂庸仰溸區區 記下 間作陟州峴山之行 勞瘁不起 悶憐中 營門月精史庫奉寶旬次定日 昨已路下來府 詣在望日 鏡湖遊覽 亦在六日 而在邑擧行 事多窘迫 悶悶柰何 路文中烏竹軒亦入 似或歷覽 玆以通奇 諒之如何 餘留 不備禮 丁巳 八月 初六日 記下 柳厚祚 拜手
竹軒 靜座 執事 入納 本倅 拜候狀 [着圖書]
